이달 초 한국소비자원은 K-컨슈머리포트(www.smartconsumer.go.krㆍ이하 컨슈머리포트) 3호 '어린이음료 품질정보'를 발간했다. 이를 기사화한 직후 기자는 음료 제조업체 홍보담당자들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 회사 제품은 설탕이 한 병에 13g이 들어서 다른 제품보다 적은 편인데도 기사 앞쪽에 우리 제품 이름을 쓰셨더군요. 억울합니다."(홍보 담당자) "13g이면 3g짜리 각설탕 4개가 넘어요. 한 병에 각설탕 4개 넣은 건 어린이 비만과 충치에 안전하고 6개면 위험한 겁니까."(기자) "컨슈머리포트도 당 함량이 17g 넘는 4개 제품이 특히 어린이 비만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는데, 그보다 적은 우리 제품이 부각되니까 억울한 것이죠."(홍보 담당자) "그건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열량ㆍ저영양 식품 기준'을 적용한 것인데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그 정도 기준에 안심할 수 있을까요."(기자)
3월 21일 발표한 컨슈머리포트 1호부터 '가볍고 질기다고 모두 좋은 제품이라고 할 수 없다'(1호ㆍ등산화), '수익률 계산에 오류가 있다'(2호ㆍ변액연금보험) 등 업계의 해명과 반발이 거셌다. 컨슈머리포트 정보 조회 건수가 5만~7만건에 달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호평과 악평을 받은 업체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반면 소비자들은 정부로부터 믿을 수 있는 상품 정보를 제공받게 돼 대환영이다. 상품이 정신차릴 수 없을 만큼 다양화 첨단화 하면서 제조사만 알고 소비자는 잘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성'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컨슈머리포트가 이를 해결해줄 주인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컨슈머리포트가 지닌 문제도 적지 않다. 2010년 '안테나 수신 불량 때문에 아이폰을 추천할 수 없다'는 글귀 한 줄로 콧대 높던 애플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를 휴가지에서 복귀하게 만든 미국의 컨슈머리포트를 이름부터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컨슈머리포트는 민간단체인 소비자연맹이 1936년 창간해 기부금과 구독료만으로 76년간 발행되고 있다. 자동차 품질평가를 위해 자체 주행 시험장까지 갖추는 등 제품 테스트에만 매년 2,100만달러(약 244억원) 이상을 쓰고 있다. 소비자들은 기업은 물론 정부에도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인 정보를 얻는 대가를 흔쾌히 지불하고, 소비자연맹은 그 돈으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컨슈머리포트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 등 정부 주도로 시작해 시비의 소지를 안고 있다.
또 정부 주도의 이점을 살리자면 처음부터 품질평가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승용차나 휴대폰 등 고가제품을 비교 대상이 했으면 더 호응이 컸을 텐데 공정위는 주로 중저가 제품을 위주로 대상을 정하고 있다. 공정위의 다음 비교 대상도 마찬가지다. 이달에 전기주전자와 젖병, 다음달에는 건전지ㆍ테이크 아웃 커피 등의 비교정보를 내놓을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단체의 의견을 들어 예산 범위(약 9억원) 내에서 품목을 선정한다"며 예산부족에 원인을 돌렸다. 하지만 제계 1ㆍ2위 기업이 만드는 제품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자신감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 같은 한계에도 컨슈머리포트에 거는 기대는 크다. 이진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컨슈머리포트가 얼마나 빠른 시일 안에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될 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이슈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이 제품과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에 집중하게 할 자극이 된다"고 평가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우린 착하다'고 광고하는 기업이 아니라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며, 컨슈머리포트가 그런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기대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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