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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발·존○ 어원을 알면 못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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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발·존○ 어원을 알면 못쓰죠"

입력
2012.05.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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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설문화 고치는 경희여중 '너나들이' 동아리

'ㅂㅅ'은 어떤 단어의 초성일까.

고요하던 중학교 운동장에 선명하게 'ㅂㅅ'이라고 적은 스케치북 한 권이 등장했다. 받침대 위에 보기 좋게 올려둔 글자에 귀가하려던 학생들이 휘둥그런 눈으로 하나 둘씩 모여든다. 갸우뚱하고 깔깔대면서 저마다 연상하는 말은 하나다.

"와하하! 병○이래.""야, 누가 운동장에 ○신이라고 써놨어."

아이들이 몰리자 교사들도 나와본다.

"선생님! 이거 뭐 같아요?"

"어…? 저기… 비, 비산."

"어휴, 억지 쓰지 마세요. 누가 봐도 병○이잖아요." 열 다섯 살들의 항변이 당당하다.

지난 가을 서울 경희여자중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이 사건의 주동자들은 이 학교 언어문화개선 동아리 '너나들이'다. '바른말 고운말 지킴이가 되자'는 뜻으로 작년 봄 처음 뭉친 2, 3학년 23명이 의도된 파문을 일으켰다. 이들은 운동장에서 보인 학생들의 반응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을 UCC로 제작해 경종을 울렸다. 학생들의 가슴 속에는 "왜 우리는 병○을 제일 먼저 떠올렸을까"하는 반성이 남았다.

너나들이는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참된 변화는 무엇보다 학생들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강용철 경희여중 교사(이화여대 겸임교수)의 제안이 모임의 단초가 됐지만 전원이 자원자로 아이디어 회의, 프로젝트 수행 등은 오로지 학생들의 몫이다.

이들은 지난해 내내 이어진 치열한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욕설 뜻 풀이 사전 발간 ▦바른말 고운말 강령 제작 ▦순 우리말 사전 제작 등 다양한 교내 캠페인 활동을 했다. '아, ○됐어'같은 표현이 입에서 맴돌 때는 '망했다'는 말을 떠올리자고 유도하는 운동이다. 욕의 어원을 담은 포스터도 각 반 교실에 붙였다. '존○'의 어원을 알고 충격 받은 학생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금은 고1이 된 지난해 동아리 회장 이예림(16ㆍ당시 중3)양은 "같은 또래가 말하니 무엇보다 시큰둥하던 친구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자치활동의 힘"이라고 뿌듯해했다. 학생언어 문화 개선사업을 진행중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 학교를 모델로 올해 전국 100군데 학교 동아리를 지원한다.

학기가 바뀌어 새 진용을 갖춘 너나들이는 16일 아이디어 회의를 열었다.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잔뜩 지친 채 모였지만, 새 욕 뜻풀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아는 욕을 모두 칠판에 적어보면서 교실이 왁자지껄해졌다. ○발, 미○놈, 존○… 20개쯤 쓰다 막히자, 동아리 내 소위 욕 종결자 3학년 김모(15)양이 나선다. 씹○레 등 몇 개를 더 써 내려가다 돌아서서 질문한다. "선생님 야부리(깨다, 찢다는 뜻의 일본어)는 욕 아니죠?"

우리말 지킴이라는 동아리 성격상 욕과는 거리가 먼 모범생 위주라고 생각하겠지만 지난해 홍보활동의 흥행으로 올해는 '욕쟁이'들도 적잖이 합류했다고 강 교사는 설명했다. 서모(15)양은 "버스에서 교복 입고 화떡(화장을 덕지덕지 한 모습을 이르는 은어)한 애가 욕하는 걸 보는데 나도 저렇게 보이면 안되겠다 싶어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김모(15)양도 "초등학교 때부터 씨○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단짝이 '너 입에 걸레 문 것 같아'라고 말해 충격 받고 고쳐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동아리 회장 3학년 박민재(15)양은 "욕을 안 쓰면 뭔가 짜증나는 느낌이 표현이 안 된다는 학생들이 많은데, 욕의 본뜻을 알려주고 대신 쓸 수 있는 우리말 용례를 정리해 후배들에게 좋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는 사명감을 드러냈다.

이날 회의에서 ▦욕쟁이에게 역지사지를 느끼게 할 역할극 대본 쓰기 ▦대중가요를 순 우리말로 개사해 관심 끌기 ▦부모님 경고 카드제 등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회장 민재양이 '욕을 쓰는 부모님에게 드리는 경고 카드제'를 제안하자 앉은 자리에서 어른을 향한 성토가 이어졌다. "솔직히 애들이 태어나자 마자 욕을 했겠냐, 다 어른들한테 배운 거지." "맞아, 어제 아빠 친구들이 왔는데 입만 열면 무조건 '야, 이○끼야'더라니까."

이들의 최종 목표는 여우비에 옷 젖듯 친구들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 "우리가 전부 못~된 무개념 학생이라 욕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뜻도 모르고 다들 하니까 감탄사처럼 입에 붙은 건데, 생각을 조금 달리할 계기만 만든다면, 바꾸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학생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언어문화 바로잡기 나선 인천 작전초등학교

화창하던 15일 인천 작전초등학교 정문 앞. 학생들의 등교도 채 시작되지 않은 이른 아침이지만 김춘원 교장을 비롯한 이 학교 교사 20여명이 교문 앞에 대거 포진했다. 잘했어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등 손에는 사랑의 표어까지 만들어 들었다. 오히려 교사들이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받아도 부족할 스승의 날 진풍경에 후다닥 땅을 박차고 골목길을 달려오던 아이들도 짐짓 점잖은 채 배꼽인사를 꾸벅 하고는 살금살금 교실로 향한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언어문화 개선사업의 하나로 '윗물ㆍ아랫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욕을 하는 아이들을 나무라기 보다는 교사와 학부모가 먼저 비폭력대화의 솔선수범을 보이자는 계획이다. 이달 14~18일은 특별히 '사랑의 언어 주간'으로 잡고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이날도 '맑은 윗물이 되자'는 뜻에서 학생들이 가장 듣고 싶은 것으로 꼽은 말들을 적어 전체 교사가 교문 앞에 섰던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일이라면 도통 관심이 없고 수업 중에는'화장실 갔다 올게요'를 연발한다는 3학년 박모(9)군도 소감을 묻자 또박또박 "선생님들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하는 걸 보면 효과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윗물ㆍ아랫물 프로그램을 위해 지난해에는 비폭력 대화법에 관한 전체 학부모 연수, 5월 초에는 교사 연수도 실시했다. 김 교장은 "저학년 일수록 결국 말과 삶의 태도는 윗사람에게 배우기 때문에 고치라고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학교 생활 속에서 예의를 가르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2학년 4반에서는 텃밭 가꾸기 수업이 열렸다. 김정민(8)군은 선생님한테서 받은 고추 모종 뿌리를 화분에 조심스럽게 놓고는 흙을 잘 다독여 덮었다. 교무부장이자 이 학급 담임인 최성숙 교무부장이 "자 이제 여러분 배운 대로 새싹 잘 자라게 '사랑해'하고 말해주세요"하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사랑해'를 연발했다. 학생들은 이틀 전 수업시간에 '하물며 식물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며 물을 줘야 튼튼하게 자란다'는 UCC를 감상한 터였다. 최 교사는 "우회적인 바른 언어 수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교사가 노골적으로 "욕을 안 해야 착한 아이에요"하고만 가르치면 콧방귀만 낄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먼저 평소 쉽게 나오지 않는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자꾸 입 밖으로 말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해 이 학교 언어개선 계획의 기틀을 잡은 최 교사는 "결국은 듣고 싶은 말을 서로 많이 하자는 것인데, 학생들은 가장 듣고 싶은 말로 추상적인 칭찬이 아닌 '참 잘했어'를 택해 인정욕구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도장이나 스티커를 받길 좋아하는 저학년은 캐릭터 인형, 마패로 바른말 어린이를 인증해주고, 고학년은 UCC제작 등을 하며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접근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 비해 하루에 욕을 10번 이상 한다는 4~6학년 학생이 4% 줄었다.

최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학교를 둘러보느라 운동장 쪽으로 향하는데 종례를 마친지 1시간은 더 된 2학년 아이들이 텃밭 주변을 배회하다 '선생님 기척'이 나자 후다닥 신발주머니를 집어 든다.

"아직까지 안가고 뭐했어요?"

"아침에 토마토랑 고추 잘 컸나 보려고요."

"선생님 저는 '사랑해'라고 세 번 더 해줬어요."

"야, 나도 했는데."

흐뭇한 마음에 최 교사의 입 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순진하게 교사가 예쁜 말을 가르친다고 어디 요즘 애들이 말 듣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것 보세요. 애들 본성이 얼마나 착한지. 이 예쁜 말씨와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하는 건 학교와 선생님들의 몫이죠."

글ㆍ사진 인천=김혜영기자

■ 청주 청운중학교 '욕근절 해결사' 문수미 교사

"야, 이 개○○야 이리 안 내놔."

충북 청주시 단독 주택 밀집 지역에 위치한 청운중학교. 늦봄 장대비가 내려 조금만 소리를 내도 복도에 쩌렁쩌렁 울리던 14일, 기자가 이 학교를 찾았을 때 남학생 둘이 2학년 교실 쪽으로 후다닥 달려가더니 이내 하는 앙칼진 욕이 복도를 날카롭게 가른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겸연쩍어 할 줄 알았던 이 학교 문수미 교사의 반응이 의외다. '애들이 방금 욕하며 뛰어가더라'는 회심의 고자질에 고개를 젖혀 웃다 망설임 없는 한 마디.

"말이 어디 쉽게 바뀌나요. 욕하기 전에 고민 한번만 했어도 다행이죠."

그는 "이래서 선생님들이 취재 온다는 얘기에 '애들이 복도에서 욕하면서 돌아 다닐 텐데 어쩌냐는 것'이냐며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고 웃었다.

청운중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 충북교육청과 함께 학생 언어문화 개선사업을 진행 중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손꼽는 언어문화 개선 선도학교. 전체 800여명 학생 중 120여명이 한 부모 가정 학생, 65명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척박한 여건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 지난해부터 언어문화 개선사업을 진행하면서 ▦설문조사 ▦동영상교육 ▦국어 올레길 조성 ▦UCC공모전 각종 계획을 세워 욕설 근절을 위해 악전고투해오고 있다. 문 교사는 청소년 욕설 사용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느껴온 국어 교사로 청운중 언어개선 사업을 이끌고 있는 주역이다.

"처음부터 아예 욕을 싹 사라지게 하는 게 목표는 아니었어요. 모든 아이가 다 바른 말만 쓰는 학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불가능하기도 하고."

지난해 4월부터 교내 언어개선 사업을 기획한 문 교사는 '당장의 입말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사이 '멋의 기준'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소위 학생들이 싸울 때만 욕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학생들을 조사해보니 욕을 하는 대상은 대개 친구들(76%)이고, 욕을 하는 이유는 기분이 나빠서(53%)와 기분이 좋아서(41%)가 1ㆍ2위를 다투더라고요."반대로 욕을 들을 때는 정말 기분 나쁘다는 학생이 79%에 달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욕을 하는 이유는 정말 단순한 거더라고요. 운동회 날 우리 반이 이겨도 '야, 존○ 잘한다', 우리 반이 져도 '에이 씨○, 존○ 못하네'해야 쿨~(cool) 하다는 거에요. 이게 아니면 무슨 말로 자신의 극한 감정이 다 표현해야 하냐는 거죠. "

그래서 그는 욕을 하는 모습이 전혀 멋지지 않다는 것을 몇 번씩 일깨워 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주문 제작해 배포한 것이 언어생활 반성수첩. 전교생이 매주 화, 금요일 아침 ▦날짜 ▦칭찬해 줄 친구 2명 ▦오늘 칭찬받을 만한 나의 언어 ▦오늘 반성해야 할 나의 언어를 기록한다.

"매일 씨○, 존○를 연발하던 학생들도 막상 자기 가방에 넣고 다닐 수첩에 글로 적어보라고 하면, 민망해서 못쓰겠다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자신이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그렇게 자극적이고 못난 말이라는 것을 매주 곱씹어보게 하는데 효과적이었어요"

올해부터는 매주 토요일 외부 강사를 초청해 '교육연극'수업도 한다. 학교폭력이나 '욕 배틀'에 관련한 상황극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

"강사 선생님이 '이 반에서 욕쟁이 둘 나와볼까'하더니 할 수 있는 만큼 무제한 서로 욕을 한마디씩 하라고 하는데, 한 2분여 만에 나머지 아이들이 '선생님 괴로워서 도저히 못 듣겠어요'하고 두 손 두 발을 들었어요. 바로 다음 시간부터 욕을 하는 학생을 대하는 표정이 달라지더라고요."

덕분에 지난달 조사에서 '기분이 좋을 때도 욕을 한다'는 학생은 지난해 41%에서 11%로 확 줄었고, 욕을 하는 친구가 멋져 보인다는 학생은 8%에서 3%로 줄었다. 욕을 무한대로 한다는 학생은 9%나 줄어드는 성과를 거뒀다. 교장, 교감, 9개 부서 부장교사, 학년 부장교사, 행정실장, 국어과 교사 전원을 위원으로 한 '학생언어개선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사업계획, 예산편성, 집행이 일사천리로 이뤄지게 도운 게 이러한 성공의 비결이다.

명실상부한 학교의 '욕설 해결사'로 자리매김한 문 교사의 요즘 고민은 강사 섭외다.

"요즘 학생들이 제일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 연예인, 유명인인데, TV에서는 거친 말을 많이 쓰잖아요. 바른말 쓰자는 강연 한번 해달라고 하루 종일 온갖 소속사에 전화 돌렸어요. 강연료가 2,500만원, 최하 700만원이래요. 어휴. 이런 건 누가 공교육을 위해 재능기부 좀 해주면 안되나요."

글ㆍ사진 청주=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욕으로 '하나'되는 아이들… 누가 그들을 욕되게 했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EBS가 지난해 말 청소년들의 욕설 사용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중ㆍ고생 각각 2명의 윗옷 호주머니에 소형녹음기를 넣어두고 등교 후 점심시간까지 그들의 말을 모두 담았다. 그 몇 시간 사이 조사에 참여한 한 고교생이 내뱉은 욕은 자그마치 385회였다. 전체 학생 평균도 194차례나 됐다. 1분여마다 한 마디씩 욕설을 한 셈이지만 실제 대화 시간이 조사 시간의 일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 한 번 할 때마다 욕 한 두 가지가 섞여 있었다는 결과다. 욕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일부 비뚤어진 청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교 1등도, 학급 모범생도, 생활도 생각도 반듯한 여학생들도 거의 누구나 대화 중에 쉽게 욕설을 내뱉고 있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욕설을 많이 하게 된 걸까.

우선 지적되는 것이 대중매체의 영향이다. 교총 역시 이 조사를 분석하면서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욕설을 사용하는 원인으로 인터넷과 방송ㆍ영화 등의 영향을 꼽았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의 의뢰로 양명희 동덕여대 교수 등이 2010년 10월 전국 중고생 1,2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욕을 알게 된 경로로 인터넷을 꼽은 사람이 26.4%, 영화가 10.2%를 차지했다. 바른 언어습관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도 실은 이 같은 욕설문화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며 교원 단체나 학교들이 '욕설 추방' '학생 언어문화 개선'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청소년들은 욕설을 쓰지 말도록 교육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래 봤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 교수 등의 조사에서 '욕설 사용에 대한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교육해야 하지만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대답이 56.3%를 차지했다.

그래서 욕을 10대들의 또래문화이고 개성의 표현이며 일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청소년 활동가인 정건희씨는 '청소년 욕 문화와 비속어의 이유'라는 글에서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들의 욕이 '몰상식하고 문제 있는 예의 없는 행위'로 비쳐지지만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일상'일뿐이라고 말한다. 앞서 나온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은 인터넷이나 대중매체보다 친구를 통해 욕을 알게 되는 경우(47.7%)가 압도적으로 많다. 욕설은 이미 습관이 되었고, 친구끼리 친근감을 표시하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이며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의 언어문화에 대한 심리적 이해'라는 보고서에서 "청소년 어휘에서 욕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간다는 것은 청소년 언어생태계에서 기존의 표준어들이 밀려나고 있다는 뜻"이라며 그들이 "정상적인 단어보다는 욕설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욕설이 주류가 되어 간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위원은 "욕설은 존중하는 언어가 아니라 비하하는 언어인데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욕설을 많이 교환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비하한다는 뜻"이며 "그런 비하의 언어가 자신들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신들의 상태'란 한국의 청소년들이 지나치게 많은 학습시간과 열악한 여가생활로 전혀 행복하지 않고 자존감도 낮아져 있는 상황을 말한다. 욕설을 아주 적거나 많이 사용하는 중학생보다 중간 정도로 사용하는 집단이 가장 자존감이 높다는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그는 욕설을 오히려 적당히 사용할 때 아이들이 "동질감을 확인하고 위안"을 느낀다고 해석했다.

경기 안성에서 청소년 쉼터를 운영하며 욕 문화를 소개한 라는 책을 낸 송상호 목사도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낸 돈이면 최고라는 물신주의 문화와 그 문화를 따라 배우라는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냉소하게 된다. 문제해결 방법은 욕 자체가 아니다. 욕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돌아봐야 한다." 송 목사는 이런 사회구조를 그대로 둔 채 "무조건 욕만 하지 말라면 아이들은 더 억압 받고 다른 방식으로 그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다"며 "욕이 학교폭력을 낳는 게 아니라 욕을 못해서 오히려 학교폭력이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때와 장소 구분 못하는 게 문제

초중고생에게 욕설은 안 하는 게 비정상처럼 돼 있다. 욕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욕설을 사용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습관이 돼서’다. 전문가들은 “습관이 돼 욕을 쓸 수 있는 때와 아닌 때를 구별하지 못해 가장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교육개발원 의뢰로 양명희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이 2010년 10월 전국 초5, 중2, 고2학생 1,26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욕을 처음 사용한 나이를 묻는 질문에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라고 답한 응답자는 각각 초5의 33.8%, 중2의 23.3%, 고2의 17.8%다. 6년 전 초등학교를 다녔던 고2 학생들에 비해 요즘 초등학생들 중 저학년 때 이미 욕을 쓰기 시작했다는 학생이 16%포인트 많다.

욕 사용 빈도를 묻는 질문에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은 전체의 5.4%에 불과해 100명중 95명이 욕을 사용했다. 습관적으로 사용하거나(12.8%), 자주 사용한다(18.8%)는 학생도 전체의 40%에 달했다. 학생들은 욕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 습관이 돼서(25.7%), 남들이 사용하니까(18.2%), 말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17%), 친구끼리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16.7%) 등을 꼽았다.

이유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체적으로 욕을 안 하는 분위기에서 한 두 학생이 하면 거칠어 보이고 천해 보이지만, 모두가 욕을 하고 특히 리더십이 있는 학생들이 욕을 하는 현재 학교문화에서는 욕을 안 하는 게 비정상적 행위로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나이가 어릴수록, 욕을 막는 주류문화에 반하는 청소년 비행 하위문화에 매료되기 쉽기 때문에 점점 사용 연령도 어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욕이 학생 사회에서 하나의 인정코드로 자리잡다 보니, 학생들이 욕을 사용해도 좋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의 유행어처럼 욕을 쓰며 성인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욕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으로 친구들과 놀 때(53.1%), 학교에서 쉬는 시간(14.8%), 학교 수업시간(1.6%)을 꼽아 대부분 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있는 학교 안에서도 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경희여중 3학년 박모(15)양은 “이상하게 집에서는 욕을 하려고 해도 안 나오는데,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말하는 일상 용어가 욕이다 보니 감각이 무뎌져, 선생님이 계신 교실에서도 욕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욕에 문제가 있고, 청소년 스스로 고쳐야 한다’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인의 욕설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56.7%로 가장 많았고, ‘줄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습관이 안돼 어렵다’는 32.5%, 줄이지 않겠다는 3.8%에 불과했다.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가 61%, ‘친구들끼리 욕을 하지 말자고 정한다’가 16.1%로 나와 청소년들이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는 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박종철 부명정보산업고 교사는 “학생들은 ‘이 정도 욕은 해줘야 무리에 낄 수 있다’는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 욕이 나쁘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며 “학생의 눈높이에서 청소년 집단이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자신들에게 어떤 심리가 숨어있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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