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70)씨에 대한 변호사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 수사 과정에서, 건평씨가 주변 인물을 통해 관리한 것으로 의심되는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되면서 이 돈의 성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제의 계좌는 창원지검이 건평씨가 실소유주인 것으로 추정되는 페이퍼컴퍼니 K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2005년 7월 설립된 K사는 건평씨의 고향 후배 이모씨가 명목상 대표이사로 돼 있다. 하지만 건평씨가 K사의 통장과 도장을 갖고 다니며 사용했고, 이 회사의 회장으로 불렸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건평씨가 K사를 불법자금의 돈세탁 창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K사 법인계좌에 대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입출금된 흔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K사는 이밖에도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자본금 2억원인 이 회사는 2006년 2월 2억원을 증자했는데, 그중 1억원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측근 정모씨 명의로 입금됐다. 그런데 이 1억원은 건평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알려진 인물의 부인 계좌에서 출금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돈은 다시 출금돼 건평씨의 부인 민모씨 계좌에서 건평씨의 사위와 처남에게 각각 4,000만원과 5,000만원이 건너갔다.
수백억원 규모의 뭉칫돈도 이런 수상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뭉칫돈 계좌 주인에 대해 "평소 건평씨와 돈거래가 많았던 점으로 미뤄 건평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문제의 뭉칫돈의 흐름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인 2008년 5월에 정체됐으며,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3~4년간 복잡하게 거래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 뭉칫돈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면 건평씨가 대통령의 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한 대가로 받은 돈의 저수지가 발견된 것이라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 건평씨는 이미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도와준 대가로 세종증권 대주주로부터 30억원을 받아 처벌된 전력이 있다. 이번 창원지검 사건에서는 공유수면 매립사업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비리에 취약한 건평씨의 평소 행태로 봤을 때, 각종 이권 또는 인허가에 개입하는 대가로 받은 돈이 추가로 드러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제의 자금이 복잡한 세탁과정을 거친 것으로 볼 때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돈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돈의 규모가 수백억원이나 돼 대통령 친인척이 개인 비리로 받기에는 지나치게 큰 금액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제기해 논란을 빚은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못지않은 파문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계좌가 노 전 대통령이나 그 가족과 연결된 단서는 전혀 없다"는 것이 검찰의 공식 설명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내내 야당의 집중 감시를 받은 건평씨에게 문제가 될 만한 돈을 맡겼을 개연성은 매우 낮다.
또한 문제의 계좌에서 오간 돈이 순수하게 사업 목적에서 움직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현재로선 여러 추측이 분분하지만, 뭉칫돈의 성격에 대해 검찰이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언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조만간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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