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교수는 스스로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지극히 차분하고 학구적이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도 않고 방송 토론에서도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이 있다. 그는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이념 문제에 앞서 민주주의 절차의 문제"라며" 절차에 대한 부정은 철저한 규명과 책임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입힌 사건이라고 했다. 진보세력이 권위주의 세력과 싸우다 스스로 권위적인 방식을 내면화했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이념 문제는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경유하면서 오히려 치열해진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언론과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통합단 공천심사에 참여한 것에 대해 "당의 공천을 외부위원들이 심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면서"지금처럼 각 당에 비상대책위원회가 가동되는 것은 정당정치의 위기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자리창출 등 경제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이 역사적 대 타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이 시끄러운데 어떻게 봐야 하나요.
가장 존중되어야 할 가치는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이념 문제에 앞서 민주주의 절차의 문제, 절차라는 것은 사실 민주주의에서도 기본이지요. 기본 위에 내용, 실질적 민주주의가 결합되는 건데, 그런 절차들의 부정이 있었다는 것이죠. 철저한 규명과 책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6월이 민주화 운동 25주년이죠.
-진보에서도 '이번은 심하다'고 하는 데요.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회적 변화는 산업화와 민주화죠. 보수 세력은 일반적으로 산업화에 친화적이고, 진보세력은 민주화에 친화적이죠. 어떻게 보면 보수세력에 의해 산업화가 주도되었다고 한다면, 진보세력에 의해서 민주화가 주도되고 있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절차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비판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도덕성에 대한 감각인 것 같아요. 한국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까요.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도덕성이 있었죠. 또 그리고 일반 국민, 시민, 유권자들도 그걸 기대하면서 표를 던졌잖아요. 이건 명백하게 도덕성에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도덕성과 민주주의 절차에 대해 훼손한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치유하고 복원할 지, 넓은 의미에서 진보개혁 세력, 좁은 의미에서는 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지신 분들이 바랐던 도덕적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번 4ㆍ11 총선 같은 경우에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진보개혁 세력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러나 결과는 패배한 것으로 나오잖아요. 진보개혁 세력을 열렬히 지지하신 분들이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상심했다,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가 우리 근대사에서 이 같은 위기에 처한 적이 있나요.
유사한 사건은 있었죠. 그러나 이번은 민주주의의 근간, 절차를 부정하는 거잖아요. 적어도 민주화 시대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진보가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때는 3당 합당 직후일 거예요. 3당 합당 직후에 이른바 거대여당이 등장하고 1993년부터 김영삼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정치적으로는 위기였거든요. 그런데 이번 위기는 도덕적 위기로 촉발 된 정치적 위기로 초유의 사건이라 볼 수 있죠.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괴리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단기적 원인으로는 절차를 무시하고 권력을 획득하겠다는 그런 것들이 작동을 했겠죠. 그러나 장기적인 원인도 있다고 보여져요. 출발점은 70~80년대 민주화 운동입니다. 유신체제나 전두환 체제 때, 반독재민주화 등 일종의 운동문화 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분히 권위적이고 집단주의적이에요.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 왔던 것 같아요. 군사독재세력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조직보전이라고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집단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 길들어져 왔고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위적인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그러니까 목적 달성을 위해서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 되는 상태까지 도달한 셈이죠.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지만, 니체가 얘기했던 것 있잖아요. 괴물과 싸우는 이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권위주의 세력하고 싸우다 보니깐 스스로 권위적인 방식들이 내면화 되지 않았는가 생각해봅니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설 만한 개념은 없는 건가요.
우리 사회는 사실 두 가지 경향이 있습니다. 이념구도가 있고 탈 이념 구도가 있습니다. 이게 중첩되어있죠. 이념구도는 보수 대 진보고, 탈 이념 구도는 기존의 구도를 넘어서는 구도죠. 밀레니엄, 2000년도가 새로 열렸을 때는 이념과 탈 이념적인 것이 서로 공존을 했었죠. 그러다가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경유하면서 이념이 훨씬 더 강력해진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연구자로서 아이러니 같은 것도 느껴요.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보수당 정부가 진보 정책을 쓰기도 하고, 진보당 정부가 보수 정책을 쓰기도 하거든요. 오히려 서구사회에서는 이념이 수렴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데, 미국 오바마 정부와 독일 메르켈 정부가 비슷하거든요. 보수ㆍ진보의 커다란 정책의 차이가 없어요. 전세계가 탈 이념시대로 나아가는데 정작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치열해지는 것 같아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념 갈등을 부추긴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미 서구 정치에서는 이념의 수렴이론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1960년대 초반 다니엘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 을 통해 수렴이론을 제시를 했지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진보시대입니다. 진보의 시대가 1980년대까지 갔다가 전환기가 있었던 거죠. 80년대부터 보수의 시대가 됩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도 있고, 복지국가의 위기 등. 그러면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죠. 보수의 시대가 열린거죠.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대처리즘 등이죠. 그러나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보수의 시대가 어떻게 말하면 종말을 고하는 건데, 이 다음에 어떻게 될 줄 모르는 거죠. 진보의 시대가 열릴지, 보수의 시대가 계속 될지, 새로운 통섭의 시대가 열릴지. 새로운 수렴인거죠. 이데올로기의>
-민주통합당 공천위원회 심사에 참여한 것은 정치참여 행위 아닌가요.
공천이라고 하는 것이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는데 기본 얼개를 짜는 거잖아요. 민주통합당의 새로운 혁신에 기여를 해보고자 참여를 했던 거구요. 처음에는 거절을 많이 했습니다만 해보니 공천심사를 외부위원들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죠. 우리 정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 심사위원들을 초청을 하는 것이죠.
-공천심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강철규 위원장이 시스템 공천이라는 절차를 만들었습니다. 절차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도덕성 문제를 포함해서 현명하게 하지 못한 부분도 좀 있고요. 정치적인 행위는 결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는 진 것이고 실패한 것입니다. 공천 심사에 참여했던 우리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민주통합당의 지지해 준 시민들에게, 투표해준 많은 사람들한테 송구스럽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에서 후퇴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시민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이런 거잖아요. 우리가 촛불집회 등등에서 볼 수 있듯이,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입니다. 좌시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민간인 불법사찰문제입니다.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권이라 한다면 민간인을 불법사찰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권 집권 4년을 볼 때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 등에 있어서 문제가 있고, 사찰 등이 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명백하게 민주화 25년을 맞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가 후퇴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철수 원장을 만난 적 있습니까.
안 원장을 몇 번 만나 우리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적인 자리라서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 드리기는 어렵고요. 개인적으로 안 교수가 대단히 진지하고 미래지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상대책위원회 전성시대입니다.
비대위의 전성시대는 것은 정당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적 유권자든 진보적 유권자든 지난 해 안철수 현상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정치의 열망들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것도 시민정치에 힘입은 게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이라고 하는 것은 다수의 시민들이 정치사회적 의사들을 반영하는 이른바 대표체제인데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 거죠. 문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에 이런 시민정치의 열망으로부터 멀어져 갔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나라당은 신속하게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겁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등은 이런 시민정치의 열망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총선에서 패배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도 그런 것에서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정치라고 하는 것이 한마디로 말해서 소통의 정치입니다.
-기업들에 공생, 상생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안철수 현상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안철수 원장이 중도 내지는 진보개혁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는 안철수 현상에 코드가 있다고 봅니다. 3가지가 소통, 혁신, 공공성입니다. 국민들은 소통, 혁신 못지않게 공공성을 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건 완전히 사익성 이거든요. 주변 측근들의 이익을 주로 챙겨온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지고 있죠. 이러다 보니 공공성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들이 대단히 높은 것 같아요. 안철수 연구소가 백신을 무료로 제공했잖아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공헌을 선구적으로 강조하고 실천해왔던 것이죠. 아무리 세계적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기업이 있는 거죠.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성 이런 것들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공공성을 높이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공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를 했고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체제라고 하는 게 완전히 산업 자체가 양극화되어 있잖아요. 사실 수출 대기업은 계속 굉장히 호황을 이뤘습니다. 환율정책이며 여러 가지, 이런 것들이 뒷받침 된 거죠. 반면에 중소기업은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었죠.
-해결 방안이 있습니까.
사회적 대화, 사회적 타협, 사회협약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추진하고 참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현안들이 뭐겠습니까.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 등입니다. 일자리 창출에 정부 역할이 한계가 있다고 봐요. 기업이 나서야 하는 거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협약을 맺어야 합니다. 대기업과 노동조합, 공익적 사회단체들이 참여해서 협약을 맺을 수 있죠. 협약에 대해서 성공적 사례로 손꼽는 것이 네덜란드나 덴마크나 아일랜드 등이지요. 노동과 자본이 역사적 타협을 하지 않는 한, 현재 이 상황을 얼마나 돌파해 나갈 수 있습니까. 기업이 방관자적 위치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정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협약이라는 것은 경제적 교환이 아니고 정치적 교환이라고 봅니다. 정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조합, 공익적 사회단체, 언론 등이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기구들이잖아요. 대기업이 일정부분을 양보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현안들을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기업도 양보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조합도 양보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사회학자로서 저는 우리 사회가 점점 지속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어요.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고요. 희망이 보이질 않아요.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는 사회적 타협, 두 번째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죠. 보수 정부가 들어서든, 진보 정부가 들어서든 정권적 이익을 넘어서 국가적 과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적 이익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 김호기는 누구
1960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학ㆍ석사를 마친 뒤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았다. 1992년부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등이 있다.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한국의> 현대>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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