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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애도예찬' 진실한 애도를 찾아 떠나는 문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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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애도예찬' 진실한 애도를 찾아 떠나는 문학 여행

입력
2012.05.1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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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예찬/왕은철 지음/현대문학 발행ㆍ404쪽ㆍ1만4,000원

애도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감과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뜻한다. 영문학자ㆍ문학평론가인 왕은철씨의 첫 에세이집은 앞머리에 애도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소개한다. 먼저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망자에게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우울증을 앓게 되는 만큼 일정한 슬픔의 기간을 갖거든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반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의 성공은 실패한 것이고, 실패는 성공한 것"이라고 말한다. 언뜻 듣기에 이율배반적인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애도에 실패할 때 우리는 망자의 빈 자리를 어쩌지 못하고 몸부림치게 되는데, 역으로 그것은 그이에 대한 기억에 충실하려는 몸짓이라는 점에서 성공적인 애도라는 것.

프로이트의 애도론이 산 자를 위한 현실 논리라면, 데리다의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윤리다. 전자가 이성과 과학(의학)이 존재를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후자는 상실의 슬픔이 존재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저자는 단연 데리다 쪽에 선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라 "타인의 죽음은 늘 첫 죽음"이라는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정한 애도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그래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돼야 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17쪽)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애도의 본질을 문학 작품에서 규명하고자 한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그리움", 즉 애도인 까닭이다. '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17편의 에세이를 통해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은 작중 인물의 언행을 섬세하게 분석한다. 대상 작품은 영문학 소설(<폭풍의 언덕> <댈러웨이 부인> <빌러비드> 등)과 시집(실비아 플라스, 테드 휴즈, 나타샤 트레서웨이), 성경(욥기), 그리스 로마 신화(안티고네, 니오베), 셰익스피어 <햄릿> , 프랑스ㆍ일본 소설 등으로 폭넓고 면면이 화려하다.

인간의 본질과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한 이들 작품에서 애도는 깊고 오랜 슬픔과 상처로 표현된다. 죽은 연인 캐서린의 유령과 살아가는 <폭풍의 언덕> 의 주인공 히스클리프, 노예로 붙들려 가지 않으려 제 손으로 죽인 젖먹이 딸의 귀신을 떠나 보내고 오열하는 <빌러비드> 의 흑인 여성 시이드, 왕명을 어기고 죽은 오빠의 시신을 묻다가 죽음을 맞는 안티고네가 그렇다. 저자는 이 비극적 인물들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기리고자 한다.

"애도의 마음이 병이라면, 그것은 걸려도 좋고 감염되어도 좋은 윤리적인 병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울증이라면, 치유를 요하는 게 아니라 더 깊어져야 하는 윤리적이고 아름다운 우울증이다."(288쪽)

이 책은 애도의 관점에서 명작을 새롭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계속 미루는 햄릿의 행동은 흔히 우유부단의 징표로 읽힌다. 저자는 그러나 햄릿의 열망은 "복수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진실한 애도"에 있다고 지적한다. "애도라는 것은 끝없이 그 존재를 자기 앞에 불러와야 하는 것인데, 복수가 끝나면 햄릿이 맞닥뜨려야 하는 마침표는 어찌할 것인가."(219쪽) 존 쿳시, 하 진 등의 소설을 가장 먼저 소개한 눈밝은 번역가인 저자는 이제 빼어난 에세이스트로서도 기억될 만하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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