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을 인솔하던 중학교 여교사의 신속한 상황 판단이 학생 수십 명을 참사 위기에서 구했다.
18일 오전 11시47분쯤 대전 우송중 2학년2반 학생들을 태우고 강원 양구군 해안면 이현리 을지전망대를 내려와 중간 검문소(정상에서 3km)로 향하던 관광버스. 안난아(34) 교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버스의 기어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차량 이상 상태를 느꼈기 때문이다. 안 교사는 학생들에게 "안전벨트! 빨리!"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버스는 그 직후 앞서 가던 차량을 추월해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도로 10m 아래 오른쪽 낭떠러지로 떨어져 전도됐다. 충남 모 고속버스 회사 소속 조모(43)씨가 몰던 이 버스에는 학생 38명과 인솔교사 2명 등 모두 41명이 타고 있었다. 이 사고로 노모(14)군 등 학생 5명이 크게 다쳐 한림대 춘천성심병원과 대전 건양대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인솔교사와 학생 등 35명이 경상을 입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 교사의 지시가 없었더라면 참변이 빚어졌을 뻔한 상황이었다. 학생 이우용(14)군은 "사고 직전에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서둘러 안전벨트를 매서 크게 다치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다 왼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안 교사는 "운전기사의 기어 조작과 브레이크 작동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을 보고 위험을 느꼈다"며 "순간 뒤를 돌아보니 안전벨트를 풀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와 '빨리 착용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안 교사는 하지만 몇몇 학생이 큰 부상을 입고 수술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송중 학생들은 2박3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떠나 이날 양구군 을지전망대와 박수근미술관을 둘러본 뒤 대전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사고가 난 을지전망대 진입로는 경사가 20도에 달하는 급커브 길로 베테랑 운전기사도 어려움을 겪는 곳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에도 경찰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도로 보수 작업 중이던 병사를 치는 등 사고가 잇따랐다. 1m 높이의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었지만 내리막길에서 가속이 붙은 버스 앞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경찰은 사고 버스가 제대로 감속을 하지 못해 커브길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날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우송중에는 자녀들의 안부를 묻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정종해 우송중 교감은 "학창시절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 할 수학여행이 사고로 얼룩져 안타깝다"며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해서 더 많은 부상자가 생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전=이준호기자 junhol@hk.co.kr
양구=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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