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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동화독법'양치기 소년 우화, 마을 사람들에겐 아무 책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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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동화독법'양치기 소년 우화, 마을 사람들에겐 아무 책임 없을까?

입력
2012.05.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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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독법/김민웅 지음/이봄 발행∙448쪽∙2만원

거짓말 잘 하는 사람을 일컬어 양치기 소년이라고들 한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의 영향이다. 재미 삼아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소년의 거짓말에 두 번이나 속아 넘어간 마을 사람들. 정말 늑대가 나타났을 땐 아무도 소년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양들이 모두 늑대에 잡아 먹혔다는 얘기다.

우린 이 우화에 '함부로 거짓말 하지 말아라, 거짓말은 거짓말 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고 배웠다. 양치기 소년은 나쁜 놈, 마을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는 피해자로 굳어졌다. 그리고 평생 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화독법> 은 이런 뿌리깊은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을 한 양치기 소년이야 나빴다고 치더라도, 과연 마을 사람들이 진짜 늑대가 양들을 쓸어버린 상황에 아무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양치기 소년의 역할은 일종의 경보장치다. 소년의 외침이 거짓이었다는 건 경보장치가 고장 났다는 의미고,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고장 난 경보장치를 수리하거나 바꾸려는 어떤 고민도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일도 없잖아, 이런 나쁜 녀석, 두 번 다시 속나 봐라' 하면서 다들 돌아가버렸다. 최소한 소년의 두 번째 거짓말이 확인됐을 땐 뭔가 조치를 강구했어야 했다. 결국 마을의 공동 비극에 대해 '남 탓'만 하고만 셈이다.

저자는 또 양들의 위험에 관해선 단 한 사람에게 정보가 독점된 구조를 지적한다. 그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정보를 쥐고 마을 전체를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마을 구성원이 그 정보가 정확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양들이, 나아가 마을이 안전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책은 <양치기 소년과 늑대> 만큼이나 친숙한 여러 동화들을 이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한다. 주인공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주인공 아닌 인물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는 배경에 숨어 있는 사회적 의미를 파헤친다. 그렇게 <신데렐라> 도, <인어공주> 도, <토끼전> 도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아이들이 읽는 짧은 우화 하나를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는 핀잔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이 동화의 교훈은 이것'이라고 공식처럼 심어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동화를 통해 훨씬 더 많은 걸 생각하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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