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시작한 뱅크런(대량인출 사태)의 불똥이 스페인으로 튀었다. 17일 스페인 4위 은행 방키아의 예금이 일주일새 10억유로(1조5,000억원) 빠져나갔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제금융시장이 급격히 요동쳤다. 그리스의 뱅크런이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전체로 옮겨가는, 유로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스페인은 이날 하루에만 신용등급 강등, 국채수익률 급등, 주가폭락의 3대 악재를 겪었다. 방키아 뱅크런설은 현지 신문 엘 문도의 보도에서 비롯됐다. 엘 문도는 지난주 방키아의 부분 국유화 조치 이후 10억유로가 인출됐으며 이는 방키아의 올해 1분기 전체 인출액과 같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10억유로는 방키아 보유 예금의 1%에 해당한다. 스페인 정부는 7개 저축은행 연합으로 구성된 방키아의 지분 45억유로 어치를 매입해 최대 주주가 됐다.
정부와 은행은 "방키아의 예금인출 보도는 근거 없는 소문"(페르난도 히메네스 라토레 재무장관) "계절적 요소가 개입한 일부 인출"(호세 이그나시오 고이리골지아 방키아 회장)이라고 말하며 진화를 시도했으나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자산규모 1위 산탄데르를 포함, 스페인 16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1~3단계 강등했다. 산탄데르, BBVA, 카이사 등 '빅3'의 신용등급이 각각 3단계 떨어진 A3로 하향조정됐으며, 등급전망도 '부정적'으로 나와 추가 강등의 여지를 남겼다. 무디스는 재정실적 악화를 이유로 카탈루냐 등 스페인 지방정부 4곳의 신용등급도 내렸다.
신용등급 강등 여파에 뱅크런 루머까지 가세하면서 방키아의 주가가 장중 한때 29% 폭락하는 등 이날 금융주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방키아와 빅3의 주식가치가 연초와 비교해 각각 61.8%, 22~43%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날 발행된 스페인 국채(24.9억유로)의 4년만기 금리는 이전 3.374%를 크게 웃돈 5.106%로 결정됐다. 10년만기 국채 금리도 최고 6.34%까지 오르며 구제금융의 마지노선인 7%에 근접했다. 런던 로보뱅크의 채권 전문가 리처드 맥과이어는 "스페인이 국채 발행에는 성공했지만 은행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조달비용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정부의 적극적 개입 조치가 불신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방키아를 국유화하는 바람에 은행권의 부실 규모만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올해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채무 비율 전망치는 79%로 프랑스(89%)보다 낮지만 과다한 민간채무가 정부채무로 이전될 가능성이 커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직접매입 등 외부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리스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날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한 단계 강등했다. 연립정부 구성 실패로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그리스는 이미 2010년부터 뱅크런이 시작돼 전체 예금의 30% 해당하는 720억유로가 빠져나갔다"며 "벨기에(1,200억유로) 프랑스(900억유로) 이탈리아(300억유로) 등의 뱅크런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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