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키, 산소 농도/피터 워드 지음ㆍ김미선 옮김/뿌리와 이파리 발행ㆍ360쪽ㆍ2만2000원
공룡은 어떻게 1억년 넘게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서? 육중한 몸집 때문에? 미국 워싱턴대 지구우주과학부 피터 워드 교수는 모두 다 아니라며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비결은 산소 적응력이다.
현재 대기는 질소 78%, 산소 21%, 이산화탄소 등을 포함한 미량의 기체 1%로 이뤄졌다. 그러나 공룡이 막 출현했던 2억여년 전 만해도 지구의 대기구성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대기 중 산소의 비율은 15%였다.
저산소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초기 공룡은 자신의 뼈 속을 비웠다. 이들이 남긴 화석을 보면 마치 대나무처럼 뼈에 구멍이 뚫려있다. 워드 교수는 이 공룡이 조류의 조상이기도 하다는 점에 착안, 뼈 속 구멍이 조류의 기낭(氣囊)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기낭은 조류의 폐에 딸린 공기주머니다. 새는 기낭 덕에 산소가 희박한 수천m 상공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초기 공룡이 가졌던 이러한 이점은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됐다.
반면 엇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포유류는 공룡이 지구의 주인이 되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들은 저산소 시대에 적합한 폐를 갖고 있지 못했다. 포유류가 기(氣)를 펴기 시작한 건 운석 충돌로 공룡이 전멸한 뒤 대기의 산소 농도가 서서히 증가하면서부터다.
워드 교수가 쓴 <진화의 키, 산소 농도> 의 요지는 간단명료하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진화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구에 동물이 출현한 5억4,0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산소 농도가 동식물의 진화에 미친 영향을 시대별로 설명한다. 진화의>
저자는 산소 농도가 급격히 낮아진 시기(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트라이아스기, 페름기)에 지금까지 발생한 다섯 차례 대멸종 중 네 번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가령 페름기 대멸종은 35%이던 산소 농도가 12%까지 떨어지면서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동식물이 멸종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때 전체 생물종의 85~90%가 사라졌다. 학계에선 페름기 대멸종을 '위대한 죽음' '모든 멸종의 어머니' '생명이 거의 죽었던 날'이라 부른다.
저자는 또 인류의 뇌 용량 변화 역시 산소 농도와 관련됐다고 말한다. 원시 인류가 살았던 500만년 전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는 28%. 뇌의 용량이 급속히 커지는데 높은 산소 농도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뇌는 다른 장기보다 산소 소모량이 많다. 물론 저자는 "아직 순전한 추측"이라고 말했지만 꽤 흥미로운 주장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