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극장에서 열린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 VIP 시사회 현장. 영화 관계자와 이들의 가족, 지인들이 주로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멀쑥한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객석 중간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이날 시사회에 썩 잘 어울리지 않는 이들 넥타이 관객의 정체에 대해 극장 관계자는 "대기업 직원들"이라고 귀띔했다.
유수한 대기업들의 직원들이 무더기로 극장을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재벌가 얘기를 적나라하게 다룬 영화'라는 입 소문 때문이다. 영화 돈의 맛은 비자금 조성을 밥 먹듯 하는 젊은 재벌 3세,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법조계와 검은 뒷거래를 도맡는 재벌의 데릴사위를 비롯해 돈의 노예가 되다시피 하는 재벌들의 타락상을 담았다. 이 영화는 16일(현지시간) 개막하는 65회 칸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도 올라 있다.
이날 영화가 처음 공개된 자리였던 지라 대기업 직원들이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볼 요량으로 직접 시사회를 찾았다는 게 제작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한 대기업 오너의 최측근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겠느냐'고 해 시사회 표를 줬다"고 전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아무리 허구라 해도 평소 일반인들이 소문으로나 들었을 법한 부정적 내용이 영화에 담겨 대기업 쪽에서 민감해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사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들 '넥타이 관객'들은 혹시 자신들의 기업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있는지, 그 강도가 얼마나 센지 살피며 메모도 하고 귀엣말로 서로 상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특정재벌을 지목할 만한 부분은 없어 시사회 뒤 대기업 관계자들이 대체로 안도하는 분위기였다는 후문이다.
특이한 건 시사회를 연 극장이나 영화 배급사 역시 한 대기업인 롯데 계열사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기업은 영화가 입 소문이 더 나서 흥행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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