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 녀석을 붙잡다 주먹에 맞아 앞니가 빠졌는데, 그 얼굴을 잊을 수 있겠어요. 지난달 교도소에서 나왔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또 부축빼기(취객을 부축하는 척 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훔치는 수법)를 하고 있더라고요."
12일 오전4시 서울 종로2가 한 건물 앞. 계단에 취해 잠든 30대 남자 옆에 앉아 있는 '5년 전 그 놈' 장모(35)씨를 본 박모(56)씨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박씨는 취객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는 듯 하더니 곧장 자리를 뜬 장씨가 훔친 지갑을 꺼내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장씨는 상습절도죄로 2년 형기를 마친 지 20일만인 14일 구속됐다.
자신이 붙잡아 3년 징역살이를 시킨 절도범을 5년 뒤 다시 검거한 용감한 시민이 있어 화제다. 최근까지 혜화경찰서 자율방범대원이었던 박씨는 종묘공원에서 노점을 시작한 1981년부터 올해까지 30년 넘게 종로의 좀도둑을 소탕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자율방범대 활동 기간도 약 10년. 시간만 나면 틈틈이 순찰을 돌았다. 그 동안 박씨가 신고한 절도, 강도범만 400명에 이른다. 같은 범인을 4번이나 신고한 적도 있다. "주말 새벽 2~3시 종로는 좀도둑 천지죠. 취객을 털려고 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만 돌리면 보인다니까요."
박씨가 스스로 민중의 지팡이로 나선 것은 종로에서 노점을 운영하며 새벽 시간대에 강도를 당했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 노점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강도 4명에게 70만원을 빼앗겼고, 10대 청소년에게 각목으로 뒤통수를 맞아 3주 동안 입원한 적도 있다.
범죄자를 찾아내는 신기한 눈을 갖게 된 걸까. 박씨는 "대상을 물색하며 여기저기 훑어보는 눈빛만 봐도 안다"며 "주변을 경계하다 보니 절로 범죄자를 식별하는 기준이 생겼다"고 말했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2010년 관철동 7층 건물 옥상에서 궁지에 몰린 금고털이범이 박씨와 동행했던 파출소 경찰관을 붙잡고 난간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고, 박씨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쳤다. 그 이후 척추 디스크가 생겨 노점을 접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게 됐지만 "당시 그에게 8년 징역이 선고됐다"며 자랑했다.
지금은 그는 주말마다 종로를 찾는다. 그러면 또 어김 없이 그의 매 같은 눈으로 좀도둑들을 포착하고 신고한다. 하지만 "신고 의도를 의심할까 봐" 신고보상금은 번번이 거절했다. 박씨는 "교도소에 갔던 범인들이 출소 후 찾아와 보복을 하기도 했다"며 끝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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