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색의 향기]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고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색의 향기]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고통

입력
2012.05.17 12:02
0 0

사람들은 무엇인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산다. 우리가 되어야 하는 건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개는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경험을 한다. 태어나서 일 년이 되면 돌잔치를 하는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아기가 어떤 사람이 될지 여러 사람 앞에서 재미로 점을 쳐보는 '돌잡이'다. 아기가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하게 되고, 마이크를 손에 쥐면 가수가 될 거라고 한다. 요즘에는 돌잡이 물건들이 더 다양해졌다. 연필, 마이크, 실 같은 것부터 청진기, 판사봉, 골프채까지 여러 가지 물건이 돌잡이에 등장한다.

살펴보면 이런 것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돌잡이 물건은 돈 잘 버는 직업을 뜻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는데 그 중 돌잡이에 등장하는 건 이렇게 돈을 잘 버는 종류다. 어떤 돌잡이 행사에도 청소용 빗자루나 경비원 모자 같은 것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어릴 적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귀찮을 정도로 듣고 자라지만, 정작 진짜로 그렇게 사는 어른들은 거의 없다. 누구든지 더 멋지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돌잡이 때부터 시작된 '되기' 강요는 아기가 좀 더 크면 드디어 본격적이고 주도 면밀하게 진행된다. 모든 매체를 이용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주입시킨다. 위인전과 TV, 영화, 체험학습, 그게 무엇이든지 아이가 자라서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어떤 무엇이 되어야 한다, 만약에 무엇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훌륭한 느낌이어야 한다는 걸 끊임없이 강요당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도 익숙하게 살아왔고, 기왕이면 훌륭한 사람 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말도 일리가 있다.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은 무척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왜 꼭 무엇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목표라는 걸 바라보고 그쪽으로 걸어야 하는 것일까.

사과나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과나무가 되기 위해 자란다. 모든 자연은 그것이 사과나무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민들레는 커다란 나무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민들레의 삶을 아름답게 산다.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 사람은 태어났을 때도 사람이고 죽을 때도 사람이다. 중간에 다른 것으로 변하지 않고, 노력을 통해서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어떤 직업을 갖든 그는 사람이다. 청소부, 공장 노동자, 대기업 회장, 연예인, 동시 통역사, 심리치료사, 이중에서 어떤 사람에게 더 뛰어나거나 훌륭하다는 말을 붙일 수 없다. 어떤 곳에 피어있는 어느 민들레가 더 훌륭한 민들레인지 말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살고, 대개 그것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다. 그 일 중에서 한두 가지를 정한다면,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며 간다면 나머지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은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인생을 살면서 지나간 것은 다시 돌이키지 못한다. 우리는 무엇이 되려고 하기 이전에 아무것도 되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면 거대한 가능성을 그대로 안고 살 수 있다. 그 대신 우리가 '되기'위해 노력할 것은 사람됨이다.

각 사람마다 그만의 향기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런 향기를 제각각 내뿜는 꽃밭을 만드는 것이다. 따뜻한 봄 들판에 나가 보면 셀 수없이 많은 꽃들이 있고, 어떤 꽃들은 서로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는 하나도 같은 게 없다. 사람도 이 같이 서로 다른 향기를 저마다 가지고 있을 때 세상은 아름답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기 전에 먼저 사람됨을 말하고, 우리가 함께 먼저 그렇게 사는 게 세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일의 시작이다. 학생들에게 성적에 관해 말하기 전에, 무슨 대학에 가라고 말하기 전에, 어떤 직장에 다니라고 말하기 전에, 얼마나 많이 버느냐고 말하기 전에, 그가 어떤 향기를 가졌는지에 대해서 서로 말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면 거기서부터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