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 반바지를 입고 지하철을 탄 30대 여성 A씨는 러시아워인 오후 6시30분쯤 자신의 하체에 뭔가 지속적으로 닿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멀쩡하게 생긴 40대 회사원 B씨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 있었지만, A씨는 자신의 반바지에 체액이 묻은 것을 발견했다. A씨는 즉시 지하철수사대에 신고했고, DNA 검사 결과 체액은 B씨의 것으로 밝혀졌다. B씨는 같은 해 6월에도 동일 수법으로 성추행을 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구속 기소됐다.
계절이 여름으로 향하면서 여성을 노린 지하철 성추행범이 늘고 있다. 특히 출퇴근 시간 강남역을 지나는 지하철 2호선에서 성추행 사건이 가장 빈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수사부(부장 김진숙)가 기소한 100건의 성추행 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성추행 사건은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55건)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1호선과 4호선 전동차에선 각각 30건, 5건의 성추행 사건이 적발됐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고 공간이 개방된 승강장 등에서는 10건이 발생했다.
2호선의 경우 신도림역부터 서울대입구역, 사당역을 거쳐 유흥가가 밀집한 강남역을 지나는 구간에서 주로 성추행이 자행됐으며 1호선은 부천역에서 구로역을 지나 신도림역으로 향하는 구간에서 성추행범들이 활개를 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 시간을 살펴보면 출퇴근 시간에 집중됐다. 100건의 범죄 중 출근시간인 오전 8~9시 사이에 39건, 퇴근시간인 오후 6~8시 사이에 20건의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다.
중앙지검이 기소한 100건의 몰래카메라 사건 분석을 보면 여성들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적발된 몰카 사건이 서울역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근처에서 무려 37건이 발생했다.
검찰 관계자는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의 경우 2개 층을 이어 운행되는 등 비교적 촬영할 거리가 길고, 역의 특성상 분주히 오가는 외지인이 많아 주요 범행 장소로 애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몰카 사범들은 노출이 심한 여름보다는 대부분 4~5월에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2007년 4월과 5월에 발생한 몰카 사건은 각각 93건, 126건으로 가장 많았다. 11~12월에는 월 발생건수가 6건을 넘지 않았다.
검찰은 지하철 성추행과 관련, “지하철 내 경고 문구를 부착하고, 출퇴근 시간대에 여성전용칸을 분리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대책을 제시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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