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관한 진상조사위 결과가 발표된 후 이 문제는 '이슈의 블랙홀'이 됐다. 여기서 문제에 관한 구구절절한 얘기를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다만 어떤 이들이 이에 대해 "그래도 비례대표를 당원 경선으로 뽑는 이 정당의 민주주의가 다른 정당에 비해선 낫다"고 말하는 게 정당한지 여부만 따져보려 한다.
사실 우리가 민주국가의 시민이란 걸 받아들이더라도, 정당 내 민주주의가 확립된 정당이 그렇지 않은 정당보다 민주주의나 정치발전에 기여한다 말할 근거는 없다. 정당 내 민주주의는 당원의 당비 납부와 정치참여를 통해 운영되는 진성당원제 정당에서나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당의 당원을 국가에 있어서 국민과 마찬가지로 그 당의 권력의 원천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만일 그 말이 옳다면 자신은 당원에 의해 선출되었으므로 당원 총투표를 통해서만 사퇴할 수 있다는 진보당 이석기 당선자의 논리가 옳다. 그러나 상황을 섬세하게 따지면 이석기를 의원 당선자의 신분으로 만든 건 일정 숫자의 당원투표이면서 동시에 비례대표 3번을 당선시킬 수 있을 정도 숫자의 총선 유권자들의 정당 투표이기도 했다. 정당의 권력은 당원의 지지를 통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다른 요소들이 결합되어서 창출된다. 그리고 이석기는 지금 명백하게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후자의 여론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중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의 역할은 그 당원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정당은 나름의 이념적·정책적 지향을 내세우고, 이 지향에 적어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지지자의 열망을 대변하면서, 일반적인 시민들에게는 국가 운영의 대안을 내세우는 선택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진성당원제 역시 정당 운영의 기본원리는 아니라 정당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는 도구적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진성당원제 정당이 아니라면 부자들에게 음성적인 후원금을 끌어오며 계파 수장의 공천에 정치인들이 몰려다니는 방식의 정치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 납득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진성당원제 정당이 정당·정치개혁의 유효한 수단으로 인정된 것이다. 그것이 그런 유효한 수단으로 인정된 건 진성당원제 정당이 그렇지 않은 정당보다 민주주의 국가가 왕조국가에 대해 가지는 어떤 우월성을 가지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진성당원제 정당의 당내선거에서 부정이 만연하다면 우리는 그 유효함에 대해서 합당한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인데, "당원 경선을 하니 더 건전하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나.
사실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새누리당처럼 공천심사위원회가 전담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 공천이 정당과 지지층의 지향을 드러내면서 시민들의 상식적 검증 요구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말이다. 물론 총선 후보 선출에 대해서라면 새누리당 공심위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지역구 후보 문제이긴 하지만 결국 김형태나 문대성 같은 후보를 걸러내지 못했고, 공심위 검증은 무사히 통과한 후보가 여론의 지탄을 받자 전격 공천 취소 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함께 '실패'로 기록될 뿐 우열을 가릴 차원이 아니다.
이번 총선엔 각 정당에서 전략공천과 국민경선과 당원경선이 섞여서 함께 나타났다. 각 정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후보도 필요했고, 복수 후보가 경쟁할 경우 그것을 가릴 어떤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당원경선을 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당보단 낫다는 주장이 옳다면 우리는 모든 정당이 총선 후보를 당원경선으로 선출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설령 진보당 당내경선에 부정이 없었더라도, 나는 당원경선을 거친 이석기보다는 거치지 않은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민주당의 전순옥·홍종학·은수미 등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후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선거부정은 진보당의 문제일 뿐, 다른 정당과 비교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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