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총선 이후 계속돼 온 그리스의 연립정부 구성이 결국 수포로 끝났다.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은 15일 주요 정당 지도자들과 회담을 끝낸 뒤 "연정구성을 위한 최종 협상에 실패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당 지도자들은 16일에도 대통령궁에서 머리를 맞댔지만, 과도 정부 구성 합의에 실패했다.
현지 AMNA통신은 다음달 17일 2차 총선이 실시된다고 보도했다. 선거를 관리할 과도정부 수반에는 파나지 오티스 피크라메노스 국무원장이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긴축반대 여론에 밀릴 그리스 정치권이 연정구성에 실패함으로써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을 포함한 세계경제도 더욱 혼미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2차 총선이 실시되면 6일 총선에서 제2당으로 부상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제1당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지 일간 비마지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2차 총선에서 시리자가 앞선 총선 득표율보다 3.7%포인트 높은 20.5%의 득표율로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경우 시리자는 제1당에게 주어지는 50석을 추가로 얻어 긴축을 반대하는 다른 좌파성향 정당들과 연정구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국민은 지난 총선을 통해 긴축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며 "국민의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자는 긴축에 반대하면서도 유로존에는 잔류하기를 원한다. 유로존 탈퇴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지 일간 엘레프테로스가 10, 11일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80% 이상이 유로존에 남아야 한다고 답했다.
유럽연합(EU)과 독일 등 국제사회도 같은 입장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주변국까지 위기가 번져 유럽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경우 유럽중앙은행(ECB)과 민간금융기관, 유로존 국가들이 입을 피해가 총 1조유로(1,478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다른 재정 위험국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높아져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이를 진화하기 위한 추가 구제금융 비용이 증가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결국 2차 총선 이후 좌파정부가 정권을 잡더라도 긴축 이행 자체를 거부하며 판을 깨기 보다는 구제금융 조건 완화에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협상 전망이 밝지는 않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16일 "구제금융 제공 조건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쇼이블레 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구제 프로그램은 세부적인 내용까지 준비가 끝났다"며 "그리스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조건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총선 이후에도 긴축을 둘러싼 그리스와 유로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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