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 수초(水草)로,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고 높이 50센티미터 정도로 자란다. 4~5월에 긴 꽃자루가 물 위에 나와 흰 꽃이 매화 모양으로 핀다.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학명은 Ranunculus kazusensis다."
사전에 나와 있는 매화마름의 정의다.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해마다 모내기 전에 갈아엎는 논에서 살아 여러해살이가 불가능하고, 대개 수면에 꽃만 겨우 떠 있을 정도의 높이까지만 자라며,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농약과 화학비료 탓에 한국에선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5월 중순은 그런 매화마름꽃이 만개하는 철이다. 아니 철이었다. 파릇한 모판을 옮기기 직전의 늦봄, 이 땅의 논은 잠시 달걀을 풀어 놓은 색깔의 꽃논으로 변한다. 그 기억을 찾아 강화도로 향했다.
"바싹 고개 숙여! 발에 흙 묻히지 않고는 안 보일 거라니까."
강화도 초지리의 논두렁에서 꽃을 찾다가 이 동네 사는 이애순(66)씨한테 지청구부터 들어야 했다. 작더라도 새끼손톱 정도 크기는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매화마름꽃은 그 절반에 불과했다. 일어선 채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크기다. 언뜻 보면 물 위에 송홧가루가 떠다니는 것도 같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었다. 결국 질퍽한 흙에 발목을 쑥 담근 뒤에야 다섯 조각으로 벌어진 꽃의 생김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 위에 떠 있는 꽃은 소금쟁이의 움직임에도 몸을 떨 만큼 작고 여렸다.
"아이고, 저게 뭐 귀한 거라고. 그냥 잡촌데. 옛날엔 뽑기 쉽게, 논에 물을 채워서 갈퀴로 걷어내 던져버리던 건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농사를 지었다는 이씨에 따르면, 매화마름은 피, 올방개, 물달개비 같은 "질긴 놈"들에 가려 농사꾼들에겐 눈에 띄지도 않는 잡초였다. 한해 벼농사를 막 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마당에, 소리 없이 무논에 찾아오는 작디 작은 손님을 반겨 맞을 여유는 없었다고 했다. 논물에 코 박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꽃의 존재를 농부들이 신경 쓰게 된 건, 매화마름꽃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이 된 뒤의 일이다.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이씨는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는 자신의 논으로 돌아가야 했다.
습지에서 자라는 매화마름은 저온의 수중에서 발아한다. 그래서 겨울에도 물을 채워둔 논에서 잘 자란다. 하얀 꽃잎에 노란 심지가 박힌 꽃의 생김새가 매화와 비슷하고 잎은 붕어마름을 닮았다. 그래서 매화마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60년대까지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제초제에 매우 취약해 1970년대 이후 거의 사라졌다. 학자들이 강화도 초지리의 매화마름 군락을 발견한 것이 1998년, 이곳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시민자연유산 1호가 된 것이 2002년이다. 2008년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강화도 매화마름꽃은 이달 말까지 볼 수 있다. 6월이면 논에 물을 빼고 모내기가 시작된다. 길상면 초지리 매화마름 군락지는 김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면 닿는 초지진 관광지 맞은편에 있다.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도 군락지가 발견돼 보존 중이다.
최근 충남 예산군 광시면, 태안군 안면읍 등에서도 매화마름 군락지가 발견됐다. 매화마름꽃이 피는 논의 일부를 분양 받아 유기농 쌀을 생산ㆍ구매하는 형식의 보존 캠페인 '꽃논사랑'이 진행 중이다. 문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02)739-3131.
강화=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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