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연정구성 협상이 실패로 끝나고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소식에 16일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치솟았다. 그렉시트(Greece + exitㆍ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공포가 시장을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의 ‘질서 있는(orderly)’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언젠가는 닥칠 리스크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준비가 채 안된 상태에서 막상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금융시장은 또 다시 크게 요동쳤다.
장 초반만 해도 국내 금융시장의 반응은 비교적 차분해 새벽 마감한 유럽과 미국의 낙폭(1% 미만) 정도를 반영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패닉(공포)이 번지면서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최대 낙폭을 보였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그리스 문제를 해결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으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감이 점점 증폭되는 양상”이라며 “뱅크런이 그리스의 몰락을 더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반영됐다”고 진단했다. 유독 우리 증시의 낙폭이 컸던 건 그간 꿋꿋이 버티던 대장주 삼성전자가 6% 넘게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승우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가뜩이나 투자심리가 악화한 상황에서 애플이 엘피다에 대규모 모바일 D램을 공급한다는 소식이 겹쳐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하면서 지수 낙폭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외국인들이 다시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6,000억원 가까운 국내 주식을 팔아 치웠던 외국인들은 유로존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이달 들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하루에만 5,000억원 넘는 주식을 팔아 치워 이달 들어 순매도액이 2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채권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이달엔 아직까지 큰 동요가 없지만, 지난달에는 1조원 넘는 자금이 이탈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유럽계 은행들의 자금 회수가 가속화하면 국내 금융지표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빼내가려는 외국인들의 달러 수요가 늘어나고 전 세계적으로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환율도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다. 불과 열흘 새 달러당 40원 가까이 폭등하며 1,160원까지 돌파한 상태. 유로존 불안이 지속되는 한 환율 고공행진도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채현기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유럽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차 저항선인 1,190원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전망도 현 상황이 유지되는 경우에나 적용될 수 있다. 만약 그리스의 디폴트 및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한다면 저항선의 의미조차 없어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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