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 1말1승을 백세작말하여 더운 물 3말에 죽 쑤어…(중략)…진말 3홉을 좋은 술에 불린 다음 넣고서 봉하여 14일만에 쓴다.'
막걸리 제조업체인 국순당 주류연구소의 박선영(39)연구원은 지난 1년 간 조선시대에 쓰여진 작자미상의 주작법(酒作法ㆍ술 빚는 방법)'서적에 나온 이 글귀를 곱씹었다. 자신의 우리술 복원 첫 작품이자, 회사로서는 19번째 복원주를 탄생시키는 작업이었기 때문.
대학에서 발효공학을 전공했지만 우리 술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우선 '백세 작말(깨끗이 씻어 가루를 냄)'이 무슨 뜻인지, 더운 물은 몇 도를 말하는지, 좋은 술은 무엇인지, 누룩을 넣은 뒤 왜 14일을 기다려야 하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 고문서를 뒤지고 수백 번의 시행 착오 끝에 '사시통음주'로 불리는 이 술의 정체를 파악하고 복원하는 데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그는 "단맛이 강한 기존 전통주와 달리 신맛이 강하고 도수는 19도로 높은 편인데도 목넘김이 좋아 술술 넘어간다"며 "자식을 하나 새로 낳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우리술 복원사업은 2008년 배중호 사장의 주도로 10억원이 투입돼 시작됐다. 주류 연구소 내 15명의 연구원들이 분기마다 자신만의 복원주를 출품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까지 주작법에 적힌 총 600여 가지 술 중 최근까지 물 없이 한 평에 나는 쌀로 단 한 병만 빚는다는 송절주, 그 해 첫 수확한 쌀로 만드는 신도주 등 19개를 복원해 내는 데 성공했다.
어려움은 고문해석에만 있는 게 아니다. 책이 쓰여진 시대와 지금은 환경이 달라 술 맛이 달라질 여지도 크다. 지난 2009년 약주의 기원으로 불리는 약산춘 복원 때는 "산 정상의 동쪽으로 난 나뭇가지를 꺾어 누룩을 저어라"라는 문구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 술의 맛을 찾은 권희숙 연구원은 "산 정상을 수십 번 올라 헤매다 지쳐 쇠 막대기로 저었니 맛이 금새 변했다"며 "자연의 도구를 이용해 정성스레 저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을 수개 월 뒤 알게 됐다"고 전했다.
수익성도 없고 복원 후 시장성도 불확실하지만, 국순당은 전통문화를 복원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신우창 연구소장은 "정확한 제조방법을 기록하고 공유해 후세들에게 우리술의 과학성을 알리고 '술은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닌 건강에 도움을 주는 약' 이란 조상들의 철학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