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아직도 북한을 추종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버티면서 국회에 입성하려는 이유가 뭔가?"
최근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를 지켜보는 상당수 국민들이 제기하는 의문이다. 이들이 '경기동부연합'이란 정파 조직의 실체를 계속 부인하는데다 비례대표 의원 당선자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종북(從北) 문제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로 인해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사퇴를 둘러싼 당내 논란을 수습하더라도 19대 국회 개원 후 끊임없이 종북 논란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진보 세력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때문에 원내 3당인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북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해 국민적 불신과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구당권파의 종북 논란은 단지 핵심 인사들의 과거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까지 이들이 북한 인권이나 핵 문제, 3대 세습 등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놓지 않은 탓이 크다.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를 비롯해 구당권파 핵심 인사 상당수가 1980년대 NL(민족해방) 운동권의 최대 지하 조직이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 받았고, 비례대표 18번인 강종헌 후보자는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3년 동안 복역했다. 군사정권 시절 NL 운동이 학생운동권을 휩쓸 때 적잖은 사람들이 지하 조직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이들은 한국사회를 '식민지 반(半)봉건 사회'로 규정해 '자주, 민주, 통일'을 내세웠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주체사상에 경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NL 운동 자체는 냉전 시대와 독재 체제에 맞서는 사회 저항 운동으로 민족 담론과 통일의식,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 형성 필요성 등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1990년대 한국사회가 민주화의 길을 걷고 북한 체제의 실상이 대중에 알려진 뒤 NL 운동은 기로에 놓였다. 당시 NL 운동에 참여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NL 운동가 대부분은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합리적 노선으로 변화했는데, 일부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는 김영환씨 등 상층 지도부는 대부분 전향하고 일부는 아예 반북(反北) 노선으로 돌아섰지만, 현장을 지키던 일부 운동가들은 NL노선을 버리지 않고 조직 활동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지역 현장에서 헌신하는 동안 상층 지도부가 180도 입장을 바꾸거나 제도권에 편입하는 것을 보고 '변절자에게 배신 당했다'는 좌절감이 컸을 것"이라며 "결국 이들에겐 구태의연한 NL을 지키는 것이 어이없게도'신념과 지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NL운동이 현장조직을 지키는 활동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지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운동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2001년 9월 NL 운동가들이 대거 충북 괴산군 군자산에 모여 '10년 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등을 결의한 이른바 '9월 테제'도 여전히 한국을 '미국 식민지'로 보는 등 시대착오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 결의 이후 NL 운동가들이 대거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NL 노선을 고수함에 따라 종북 의혹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이들이 곧바로 북한의 지령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많다. 옛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민혁당 사건 경험으로 북한과 관련을 맺으면 조직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직접 접촉은 절대 피한다"며 "반미와 자주가 뿌리 깊은 신념과 정서로 남아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이 같은 신념도 흐릿해져 NL 노선이 사실상 조직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시각도 있다. 딴지일보 정치부장 박성호씨는 "사상의 잔재는 사라지고 집단주의적 사고와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이권 등 권력욕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바로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배후 정파가 NL 노선을 지키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들의 정체성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묵묵 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종북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이들이 국가 예산과 고급 정보 등을 다루는 헌법기관인 국회에 대거 입성하고 스스로 헌법 준수와 국가 이익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선서하는 만큼 자신들의 신념과 노선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의영 서울대 교수는 "스스로 노선을 재점검해 북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 국민들의 불안과 의문을 해소해주는 것이 진보정당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종북논란이 사상 검증식의 공안탄압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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