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대형 조선업체는 영국 선주사인 조디악마리타임로부터 5,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발주의사를 전달받고 아연 실색했다. 선주측이 "4,000만달러대로 가격을 맞출 수 있겠느냐"고 물어온 것. 이 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세계 조선 시장이 불황이더라도 5,000TEU급 컨테이너선 건조가격을 5,000만 달러 이하로는 받을 수 없다"면서 "당장 한 척의 배가 시급해도 이런 식의 헐값 건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선주측 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세계 조선시장이 긴 불황의 늪에 빠져들면서, 선주사들의 가격 후려치기가 도를 더해가고 있다. 15일 영국 조선ㆍ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이달 클락슨 선가지수는 135.3으로, 지난 2008년4월(13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선가지수가 낮을수록 컨테이너선 등 상선 시장이 악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리먼사태 직전인 2008년 9월 8,400만 달러까지 올랐던 5,000TEU급 선가는 현재 5,300만 달러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1만3,800TEU급 컨테이너선 선가는 1억7,000만 달러에서 현재 1억1,500만 달러 수준 까지 추락했다. 평균 30% 이상 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원유 개발로 그나마 컨테이너선에 비해 발주사정이 나은 원유운반선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27일 기준 초대형 원유운반선의 선가는 9,650만 달러로 지난 2004년 8월(9,250만 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문제는 선주사들이 조선업체들에게 갈수록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신규 선박 발주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조선사간에 저가라도 수주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자 선주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격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디악마리타임은 5,000TEU급 컨테이너선 발주와 관련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 업체에 4,000만달러에 제의를 넣었지만 모두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조디악은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과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조디악이 국내 조선업계가 상선 수주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시장 가격 보다도 낮은 가격에 발주를 하려 하고 있다"면서 "만약 5,000TEU급 컨테이너선을 4,000만 달러대에 수주한다면 단지 생산라인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이득도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한 대형조선사는 최근 대만 선주사로부터 1만3,800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했는데 계약 금액은 시장가격보다도 낮은 1억1,400만달러 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이 가격으로 받아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지만 대형 도크를 놀릴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저가수주제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