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선생님), 우리 함께 하는 동안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요."
"내게 고민을 털어놔줘서 고마워. 난 언제나 네 편인 거 알지."
주고 받는 말도, 마주 웃는 모습도 다정했다. 서로가 "나이 차이 나는 친구 같을 때가 더 많다"는 이지혜(26·여) '쌤'과 중학교 3학년인 이모(15·여)양은 2010년 4월부터 학교 밖 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두 사람은 성인 자원봉사자가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청소년을 고교 졸업 때까지 멘토링하도록 엮어주는 사회복지단체 러빙핸즈 소개로 만났다.
스승의 날인 15일 만난 이씨는 "처음엔 쑥스러워 눈도 못 마주치던 아이가 3개월쯤 지나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며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힘들게 보낸 어린 시절을 털어놓고는 내게 '정말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옆에 있을 거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이양은 부모님 이혼 후 아버지, 할머니와 살았지만 늘 외로웠다. 어머니와 몰래 연락하다 아버지에게 들켜 맞기도 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수발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쌤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조차 없었다"는 이양의 말에 이씨는 "너를 끝까지 지지하는 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2년간 한 달에 두 번, 이씨와 수다 떨고 밥을 먹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이양의 웃음도 늘었다. 지난해에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이양의 한 마디에 이씨는 러빙핸즈를 통해 인디 가수 '나들'에게 이양이 보컬테스트를 받을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씨는 "이양의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선생님이 되려고 서울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했던 이씨는 교생 실습 후 임용고시를 포기했다. "공부 잘 하는 소수를 제외한 다수는 선생님들로부터 소외 받을 수밖에 없는 공교육 현실 때문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2010년 졸업 후 대안학교 행을 선택했고, 지난달부터는 온라인 교육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이해하는 데 이양과의 대화가 큰 도움이 되었으니 내게는 이양이 스승인 셈"이라고 말했다.
학교 폭력과 교권 추락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돌아온 스승의 날, 이들이 학교 교사와 학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양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조하지 말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재능이 있는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찰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어른들이 앞날을 제시해주지 못한 탓에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시기에 꿈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아이들이 무엇보다 자기 삶을 사랑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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