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정도로 여겼지만, 이제 여차 하면 불확실성을 키우는 대형 악재로 번질 조짐이다.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회원국 탈퇴가 이뤄진다면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가져올 직접적인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들에까지 전염된다면 유로존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일보가 15일 국내 경제 전문가 7명을 상대로 긴급 설문을 벌인 결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은 평균 40% 정도로 예측됐다. 여전히 잔류 쪽에 좀더 무게를 두고는 있지만, 이젠 유로존을 탈퇴할 가능성도 적잖이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전문가 7명 중 5명이 탈퇴보다는 잔류 가능성을 더 높게 봤지만, 2명은 탈퇴 가능성을 60%로 내다봤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곧 그리스의 몰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ㆍ장기적으로는 통화가치 절하로 경쟁력이 다시 생길 수도 있다지만, 당장 유로화 표시 부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살인적인 인플레에 시달릴 수 있다"고 평가했고,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도 "산업 경쟁력이 취약한 그리스는 통화가치 절하 만으로 경기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관건은 그리스라는 악성 종양을 떼내는 대수술을 단행해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유로존이 그간 충분한 체력을 비축했는지 여부다. 물론 2년 여의 대비 기간이 있었던 만큼 그리스 탈퇴가 몰고 올 직접적인 충격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실장은 "이미 헤어컷(채권 할인)을 통해 그리스 국채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 놓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유로존을 심각하게 위협할 상황은 지났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다른 재정위기국으로 전염되는 경우 사태는 간단치 않다. 이미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유로존이 유럽안정기구(ESM) 5,000억유로 등 두터운 방화벽을 쳐놓긴 했으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 경제대국으로까지 사태가 번진다면 감당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유로존에 대한 시장 불신이 증폭되면서 생기는 간접적인 파급 효과가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라며 "스페인, 포르투갈, 심지어 이탈리아로 불똥이 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유로존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2008년 리먼 사태와 비교해선 충격이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의 본질이 시장에 모두 노출됐다는 이유에서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리먼 때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고, 김지환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불확실성, 복잡성 면에서 이번 사태가 훨씬 명료하다"고 평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방아쇠가 당겨진다면 우리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금융시장 현실을 감안할 때 유럽자금 이탈 등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은 한동안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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