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육차관이 돌연 경질됐다. 부임 4개월만에 시쳇말로 잘린 것이다. 여러 명의 다른 부처 차관급 인사에 묻히다 보니 인선 경위는 따로 설명이 없었다.
무릇 차관은 해당 부처의 내치(內治)가 주된 역할이다. 부처 수장인 장관이 각종 대외 활동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라면 차관은 부처 구석구석의 문제들을 점검해 '누수'가 없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가정으로 치면 장관이 아버지라면 차관은 어머니 같은 존재다. 이런 까닭에 부처 운영에 심각한 하자가 드러나면 대통령이 장관을 바꾸지 차관을 내보내는 경우는 웬만해선 찾아보기 어렵다. 예외는 물론 있다. 비리 같은 게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은 인선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의아스러웠다. 비리가 있었던 건가, 아니면 부내 직원들과 돌이키기 힘든 불협화음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장관과의 갈등? 뭐 이런 여러 생각들이 맴돌았다. 그런데 한가지 짚히는데는 있었다. 25억원의 아까운 세금만 날리고 웃음거리가 돼 버린 학교폭력 전면 실태조사 책임을 혹시 차관한테 물은 것은 아닐 까, 라는 예상이었다. 이게 맞다면 정말 소가 웃을 일이라고 여겼는데, 진짜로 현실이 됐다.
나는 엉터리 학교폭력 실태조사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봤다. 정부가 혈세를 쏟아부어 주도한 조사가 맹탕이었음이 판명났는데도 관련 부처 어느 누구도 사과 한마디 않고 버티는 용기가 놀라웠고, 한편으론 딱했다. 여론이 계속 악화하자 장관이 교장들 모인 자리에서 어물쩍 반성 투의 발언으로 미봉한 게 전부였다. 역대 정권에서 이 정도 사단이 났다면 장관이 경질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몇 사람이 문책될 거라는 얘기를 들은 게 열흘 전 쯤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딱 두 사람이 날아갔다. 교육차관과 청와대 교육비서관. 청와대 교육비서관은 전에도 업무 추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은 터여서 이상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으나, 교육차관은 진짜로 의외였다.
왜 교육차관을 날렸을까. 교육 정책의 정점엔 장관이 있는데. 교육차관을 희생물 삼았다는 거 외에는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없었다. 장관의 짐을 대신 짊어졌다고 여겨진다.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선 매서운 여론의 질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학교폭력 실태조사 부실 파장을 그냥 넘기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주호 장관대신 이상진 차관을 선택했다. 신임이 두터운 이 장관을 내치기란 어려웠을거라는 판단이다. 차관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많겠지만 어쩌겠는가. 인사라는 행위가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인걸.
문제는 교육차관의 경질이 단순하게 차관 한 명을 교체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데 있다. 공무원 계급의 특성상 예상치못한 돌발 인사는 조직을 일시에 뒤흔들어 놓기 마련이다. 친정 식구가 승진해 차관이 됐는데, 반년도 안 돼 갈렸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교육부가 딱 그런 꼴이다. 넉 달 만에 타의에 의해 물러난 차관 후임에 1급 승진한 지 얼마 안 된 50대 초반의 젊은 관료가 중용됐다. 이 1급 빈자리를 메우기위해 역시 국장 딱지를 갓 뗀 인물이 승진했다. 그다음 '인사 도미노'는 설명이 필요없다.
원칙도, 기준도 없는 이런 식의 '묻지마 인사'가 가져올 부작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차관을 전격적으로 바꿈으로써 교육 관료들은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됐다. 연쇄 인사로 인해 교육정책 입안의 중심에 있던 '에이스'들의 수명은 급격히 짧아지게 된 것이다. 내년 2월 정부가 바뀌게되면, 이번에 졸지에 승진한 교육 관료들의 목숨도 끝이 난다. '교육 관료의 씨를 말리는 인사'라는 자조가 그래서 나오는 듯 싶다. '나대로 인사'에 반대 목소리 한 번 못낸 교육부 공무원들의 '업보'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부처였다면 이런 인사가 가능이나 했을까. 교육부는 정말 만만한 부처인가 보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