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경찰의 폭행에 숨진 노동자 고 문영수(당시 28세)씨의 슬픈 장례식이 30년 만에 치러졌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의문사유가족대책위원회로 구성된 고 문영수사건대책위원회는 15일 광주시 동구 학동 전남대 의과대학에서 경찰폭력과 시신훼손 희생자인 문씨의 영결식을 가졌다. 이어 문씨가 폭행당해 숨진 광주서부경찰서 앞마당에서 노제를 열고, 강원도 춘천의 가족묘지에 유골을 봉안했다.
대책위는 “광주서부경찰서와 광주북구청, 전남대 의대 등 가해 기관 3곳에서 미흡하나마 사과의 뜻을 전해왔고 30년 넘게 유골을 방치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해 늦게나마 장례를 치렀다”고 밝혔다.
문씨는 82년 8월 서울의 한 버스회사에서 일하다 부당하게 해고되자,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 도착해 사소한 시비에 휘말렸던 그는 광주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경찰의 폭행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만에 숨졌다.
당시 경찰은 폭행사실을 감추려고 고인을 행려병자로 둔갑시키고 주검조차 해부학 실습용으로 전남대 의대에 기증해버렸다. 전남대 의대는 문씨의 시신을 실습용으로 이용한 뒤 84년 1월 화장해 의대 추모관 한켠에 안치했다.
유족들은 사라진 문씨의 행방을 찾아 수소문하다 87년 5월 경찰의 ‘헤어진 가족찾기 캠페인’을 통해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 문씨가 억울하게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사인규명을 요구하며 치안본부와 광주지검 등에 진정했다. 결국 광주지검은 그 해 8월 문씨를 담당했던 경찰관 최모씨를 사망경위 등을 은폐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로 구속했다.
또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문씨 사건을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피해사례로 규정했고, 서울고법은 2011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고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대책위는 “다시는 이런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가해기관의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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