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두고 있는 정모(45)씨는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아침 숨이 턱 막혔다. 한 유명 백화점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이 넘는 값비싼 명품을 스승의 날 선물로 추천한다며 뿌린 광고지를 본 탓이다. 광고지에는 'A백화점 본점은 5월 14일 정상 영업합니다'는 문구와 함께 58만원짜리 명품 M시계, 35만원짜리 D사 벨트, 219만원을 호가하는 M사 핸드백 등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정씨는 "가뜩이나 스승의 날 선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인데 업체들이 과소비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 정도 수준이면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라고 꼬집었다.
학교 차원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주고 받지 말자는 캠페인이 시작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학부모들은 스승의 날이 고민스럽다. 사교육 시장이 커지면서 학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 선물이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 유통업체가 30, 40대 고객 6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설문조사 한 결과 스승의 날 선물을 하고 싶은 대상으로 학원 강사(40%)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담임교사(26%), 멘토(16%), 어린이집 선생님(12%) 순이었다. 중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조모(41·서울 은평구)씨는 "아이가 학원을 다닌 이후 수학 점수가 20점 이상 올랐는데 선물 비용으로 수십만원이 아깝겠느냐"며 "학교의 경우 선생님들이 선물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니 학원 선생님을 더 신경 쓴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이나 학습지 선생님에게 인사치레를 하는 관행도 학부모에겐 부담이다. 올해 다섯살 된 아들을 처음 어린이집에 보낸 새내기 주부 박모(32)씨는 "7만원 정도 하는 화장품을 어린이집 선생님과 방문교사에게 각각 선물했는데, 비용도 부담되지만 초보 엄마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경쟁을 하고 있어 더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이유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장려할 일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형편에 따라 선물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며 "매년 반복되는 스승의 날 문제를 각 학교 판단에 맡기기 보다 이제는 교육부 차원에서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