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다니던 직장을 나온 A씨는 퇴직금에 은행 대출을 받아 수도권의 한 상가에 594㎡(180평) 면적의 넓은 매장을 임대해 식당을 하기로 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한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는 A씨에게 "서울에만 가맹점이 50개 이상이고, 하루 매상 400만원은 거뜬하다"며 "가맹금 1,600만원만 내면 영업 노하우 전수는 물론, 식자재까지 공급받을 수 있어 경험이 없어도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한껏 기대에 부풀었지만 정작 문을 열자 일 매출은 40만원이 안 됐고 프랜차이즈 상표가 찍힌 포장용기 공급조차 약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임대료 내기도 빠듯했던 A씨는 결국 반 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업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 회사는 서울에 가맹점을 단 한 곳 두고 있었고, 대형 매장을 운영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횡포로 창업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 출생자)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창업 열풍이 불고 있으나 제대로 된 노하우도 없이 이들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영세 프랜차이즈 회사들 때문에 퇴직금까지 탕진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책은 대형 프랜차이즈의 부당한 행위를 막는 데 그치고 있어 영세 프랜차이즈의 횡포는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가맹사업거래 분쟁조정협의회에 접수된 조정신청 건수는 2008년 291건에서 지난해 733건으로 3년 새 2.5배 폭증했다. 매출이나 가맹점 수를 부풀리는 등 허위·과장 정보를 이용해 가맹점주를 모집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는데 계약기간 중 영업을 그만뒀으니 오히려 위약금을 내라고 하거나 특정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을 강요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파렴치한 행위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이 분쟁이 급증하는 원인은 영세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난립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프랜차이즈 업체는 14일 현재 3,021개. 이 가운데 아예 가맹점이 없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가맹점 평균 매출을 산정조차 못하는 등 영세한 업체들이 3분의 2(2,185개)를 훌쩍 넘는다. 반면 전국적으로 가맹점을 100개 이상 갖고 있는 '비교적 번듯한' 프랜차이즈 업체는 고작 6.5%(196개)에 불과하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식당을 운영하다가 장사가 잘 되면 상표등록부터 하고 본다"면서 "이런 프랜차이즈 회사는 경영 노하우가 빈약하고 상권 분석능력도 없어 가맹점 계약을 맺었다가는 피해를 보기 쉽다"고 지적했다.
영세 프랜차이즈로 인한 분쟁은 계속 늘어날 추세인데도 정부의 대책은 대형 프랜차이즈에만 집중돼 있다.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대책은 '가맹사업 모범거래기준' 마련이 거의 전부다. 영업지역을 보장하지 않고 기존 가맹점 옆에 새 가맹점을 내거나 재계약을 조건으로 수 억원이 드는 매장 리뉴얼을 강요하는 등 대형 프랜차이즈의 횡포를 억제하겠다는 것. 때문에 영세 프랜차이즈 대책은 민원이 들어오면 분쟁을 조정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 사실상 방치돼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해당 과 인원이 3명인데 그나마 정보공개서 등록, 사건처리, 모범거래기준을 각각 전담하고 있어 영세 프랜차이즈 대책을 따로 마련할 여력이 없다"며 "현재 추진 중인 모범거래기준이 이들 영세 업체까지 확산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한규철 세종사이버대 외식창업프랜차이즈학과 교수는 "프랜차이즈 회사를 하려면 공정위에 정보공개서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 때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등을 판단해 함량 미달인 회사들을 걸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 교수는 프랜차이즈 회사들에 대해서도 "가맹점 한두 개 더 내는 것보다 제대로 사업을 할만한 가맹점을 가려 모집하는 게 결국 성공의 비결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며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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