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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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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32>

입력
2012.05.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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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마당 한편에 가족들이 수감자의 밥을 넣어주는 곳과 죄수들 하루 두 끼니 밥을 급식해주는 곳이 있었는데 소금물 적신 조밥 한 덩이가 전부였지요. 마침 주막에 남았던 일행들이 있어서 저나 이 서방은 이바지 칸으로 가서 그들이 넣어준 사식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광대들의 행하는 원래가 상단과 약조할 때에 받는 어음이라 감영의 주인 구실하는 객주나 상단 임방에 가서 돈과 바꿔야 했지요. 아무튼 천지도 사람들이 십시일반 걷은 돈이 겨우 삼십 냥이라 저만 먼저 벌금을 내고 나왔구요, 이 서방은 저보다 사흘이나 늦게 나왔습니다. 이 서방은 공주 감영까지 연희패 모갑이를 보내어 어음을 바꿔다가 벌금을 내고, 나머지로는 옆 칸의 죄수들과 그 가족들에게 며칠 동안의 사식비를 넣어주었습니다. 내가 차마 지척에 있는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못 하고 기다리다 이 서방이 석방되어 함께 영동 장터 길로 나오는데, 이미 민변을 일으켰던 소두 사내가 참형을 당하여 그 머리가 장대에 높이 걸려 있습디다. 상투에 새끼줄을 감아 장대 끝에 매달았는데 잘린 목의 피는 검게 말라붙었고, 얼굴은 처형할 적에 바른 횟가루가 지워지지 않아 새하얀 색인데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더군요. 관문에 작변한 자는 위에 상주하지 않고 부대시수(不待時囚) 처리하여 즉시 효수(梟首)한다는 율에 의거했겠지요. 장꾼들은 얼른 지나가며 힐끗힐끗 돌아보았고 모여든 어린애들을 어른들이 쫓기도 했는데, 이 서방은 장대 아래 떨어져 고인 피 위에 발끝으로 그러모은 흙을 자꾸만 끼얹었습니다. 나는 그가 하는 짓을 말없이 지켜보며 기다렸지요. 이 서방이 돌아서는데 보니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더군요. 이것이 그가 천지도에 입도한 때에 겪은 일이었습니다.

무주 배 서방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이제 또다시 금산 옥천 거쳐서 보은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보은 읍내에 가서 이 의원 댁을 찾으면 이신통의 고향집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배 서방은 말했다.

옥천 가서 다시 하루 묵고 이튿날 느지막이 출발했는데도 정오 전에 보은 현에 도착했다. 큰잿내를 건너 버드쟁이 주막거리에 이르니 바로 읍내의 시작이라 내가 안 서방에게 일렀다.

여기서 국밥 요기라도 하면서 이 서방네 집을 물으면 어떻겠어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의원이 오래된 의생이라니 이 고장 토박이들은 다들 알겠지요.

우리는 마방은 없이 툭 터진 마당 앞에 장목을 울타리처럼 세워둔 주막 앞에서 멈추었다. 안 서방이 깍지 낀 두 손으로 노둣돌 노릇을 하여 나는 말에서 내렸고 주막집 중노미가 얼른 나와서 말을 끌어다 고삐를 장목에 묶어주었다.

저것들 꼴 좀 주어라.

안 서방이 이르고 마당에 들어서니 평상과 마루에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우리는 두리번거리다가 마당에 토담처럼 올린 화덕과 가마솥 앞에 주모가 앉은 것을 보고는 가까이 깔린 멍석에 가서 털썩 앉았다. 주모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기 평상에 빈자리가 많거늘 어찌 여기에 앉는 거유?

내 대신 안 서방이 말했다.

우리가 주모에게 말 좀 물으려고 여기에 앉는 거외다.

자아, 국밥 둘이시지? 근데 뭘 물으려 하우?

멍석 위에 두 장 가웃의 긴 널판자를 잇댄 간이 상이 놓였는데 주모는 직접 뚝배기에 밥을 담고 국을 퍼서 두 그릇을 내었다. 나는 멍석에 앉으면서 장옷을 벗어서 무릎 위에 개켜 놓았더니 주모가 짐짓 우리를 떠보는 것이었다.

내외간인 것 같지는 않고, 친정에 다니러 오셨는감?

나는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하고 안 서방이 말했다.

여기 친척 집 찾으러 왔소. 혹시 읍내에 이 의원 댁이 어딘지 아슈?

읍내에 이 의원이라면 제생약방일 터인데…… 그 양반 몇 년 전에 작고했다든가 뭐 그런 소릴 들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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