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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촌 담벼락에 알록달록 그림 선물한 '핑퐁아트' 김현민·서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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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촌 담벼락에 알록달록 그림 선물한 '핑퐁아트' 김현민·서민정씨

입력
2012.05.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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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영등포 쪽방촌. 칙칙하고 음습하기까지한 분위기가 환해졌다. 길게 이어진 회색 담벼락엔 기차가 들어왔고, 좁은 골목 한쪽 벽엔 네잎클로버가 폈다. 거짓말처럼 파랑새도 앉았다. 주민들은 모처럼 집 밖으로 나와 전업 작가들의 붓질 작업을 신기한 표정으로 지켜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저 기차 타고 여수 가고 싶다.", "여기에 내 얼굴도 그려줘요."… 쪽방촌 골목이 술주정이 아닌 이웃들의 대화로 채워지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이날까지 쪽방촌에 모두 21개의 벽화를 그려 넣은 이는 핑퐁아트 공동대표 김현민(30), 서민정(30)씨다. 이들은 "우리 작업으로 무표정한 쪽방촌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는데 성공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541가구, 617명이 모여 사는 영등포 쪽방촌은 서울의 5개 지역 쪽방촌 중에서도 주거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 이런 곳을 경남 통영 동피랑 마을에 버금가는 벽화 마을로 바꾼 주역이 2인 창업 기업 '핑퐁아트'다.

젊은 미술인들의 작품 판로를 열어주고 이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기위해 고등학교 동창인 두 사람이 지난해 8월 창업했다. 서씨는 "작가들의 미술적 재능을 활용해 공동체에 어떤 이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벽화 작업을 떠올렸다"고 프로젝트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시도 제안을 선뜻 받아들여 제반 비용을 대면서 3월부터 일이 시작됐다.

'길과 길이 통하는 동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마을', 일명 '길통맘통'이라는 슬로건도 정해졌다. 쪽방촌 주민들이 꽉 닫힌 마음을 열고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5, 6일과 12, 13일 나흘에 걸쳐 완성된 벽화들의 주제는 '쪽방촌의 역사'와 '쪽방촌 주민' 등 2가지. 한국전쟁 당시 형성된 쪽방촌 풍경을 옮겼거나 '영등포 속 우리마을', '첫사랑', '노동' 등을 제목으로 한 벽화에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이야기를 담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8명의 핑퐁아트 회원들과 자원봉사자 200여명이 팀을 꾸려 수 차례 동네를 답사하고 주민들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첫사랑'은 실제 그 골목에 사는 주민의 첫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노동'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쪽방촌 주민들이 모델이 됐다.

김씨는 "하루하루 땀 흘려 먹고 사는 분들이 쪽방촌에 정말 많다"며 "폐휴지를 줍거나 새벽부터 역 앞에 나가 행상을 하는 분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심이 통했을까. 외부인들을 극도로 경계하는 쪽방촌 주민들도 오고 가며 "새 동네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서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인근 노숙인들이 벽화를 훼손할라치면 나서서 막기도 했다. 김씨는 "주민들이 고생한다며 아이스크림을 손수 사오고 너도나도 우리 집 앞에 벽화를 그려달라고 해서 감사하고 또 뿌듯했다"고 했다.

서른 살 동갑내기 청년 2명의 계획은 다른 쪽방촌에도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소외된 지역으로 찾아가 주민들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음악인 그룹과 협력해서 대중들과 미술ㆍ음악으로 소통하는 작업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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