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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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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단상

입력
2012.05.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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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열렸던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의는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고함과 욕설, 단상 점거와 폭력이 난무하면서 혹시나 마지막 순간에 어떤 극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은 산산이 무너졌다. 사실 진보당 내부 특정 당권파의 패권주의 문제는 총선이 있기 전 서울 관악을 지역구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 시비로 인해 불거져 나왔고, 당시 이정희 대표가 마지막 순간에 사퇴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했다. 이번에도 어떤 타협안 내지는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례대표 경선 과정의 '총체적 부실과 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일련의 대표단 회의, 운영위, 그리고 엊그제 중앙위 회의를 통해 드러난 것은 당권파의 총체적 반민주성과 몰상식적 행태였다. 온갖 궤변과 억지, 물 타기와 시간 끌기 등으로 당내 의사 결정과정을 방해하더니 이제는 폭력적 추태까지 보이면서 정당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보당의 좌초와 진보정당 실험의 실패를 목도하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지만, 다른 한편 정치학을 전공하고자하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가르치는 입장에서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줄지 당혹스럽다. 일각에서는 정파적 이익을 둘러싼 권력 투쟁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당권파의 행태에 대해 1980년대식 운동권 문화 혹은 사이비 종교집단의 멘탈리티로 설명하기도 한다. 군사독재 시절이 만들어 낸 일종의 변종으로서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는 식의 설명인데, 독재 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의 긴 여정 끝에 자신만이 선이며 상대는 악으로 간주함으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흉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돈과 자리 욕심에 눈먼 '생계형 주사파'들이 당권 뿐 아니라 금권을 노리고 있으며 '야당을 먹고 이제 대한민국을 먹을 채비'를 하고 있는 종북 NL(민족해방파)이 이번에 너무 급히 먹으려다가 체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진단을 넘어 처방에 이르면 더욱 혼란스럽다. 일단 진보 진영에서는 '진보는 죽었다'는 식의 비관주의와 패배주의가 만연하는 듯하다. 보수 쪽에서는 민주적 헌법정신을 위반한 진보당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문제시하거나 검찰의 공안적 개입, 나아가 정당해산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한편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진보당과의 연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야권연대 폐기론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권파가 아무리 흉물스러워도 진보당은 이번 총선에서 10%의 지지를 얻은 제3정당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민 중에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이미 상당수며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 경제사회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질 것이고 따라서 진보 정당의 역할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공산이 크다. 이는 갈수록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도 나타나고 있다.

필자가 가르치는 '시민정치론' 수업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이번 사태에 대한 희망적 프레임을 던져볼까 한다. 시민들이 진보당 당권파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오히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진정한 진보 정당이 발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진보당 문제는 우리만의 역사ㆍ문화적 병폐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논해볼까 한다. 일찍이 20세기 초 로버트 미켈스가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발견한 '과두제의 철칙'을 제시하면서 당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과 당내 엘리트의 과두제 현상은 새누리당 혹은 민주당이건 유럽 사민당이건 여느 정당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당내 민주주의를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적 고안과 전략적 사고를 요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당내 정파적 패권주의 극복을 위해 당원 중심의 경선을 시민들이 온ㆍ오프라인으로 참여하는 보다 개방적인 경선으로 바꾸는 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정파논리에 치우친 진보정당의 폐쇄성을 완화하면서 동시에 참여민주주의적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시너지를 모색하는 방안일 수 있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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