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주,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11월 대선 고지를 향한 길목에서 진보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다는 평가다. 그런 뜻대로 진보적 언론은 사회 소수집단의 행복추구권을 돌본 이정표적 선언이라고 찬양했다. 반면 보수 쪽은 무모한 포퓰리즘으로 폄하한다. 지레 '자살 골'로 규정한 논평도 있다.
그 가운데 "선거 정치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의 옳은 쪽에 섰다"는 평가가 눈길을 끈다. 재선에 불리할 것을 무릅쓰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에 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힌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진보적 주간지 뉴리퍼블릭은 'Thank You, President Obama'제목의 논평을 헌정했다.
여론 변화를 좇은 전략적 선택을 과장되게 칭송한 것일 수 있다. 동성결혼 찬반 여론은 1996년 대선 때만 해도 3 대 7로 반대가 압도했으나 2004년 4 대 6이 됐다가 2008년 찬반 균형을 이뤘다. 이어 올해 모든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역전됐다. 무당파 유권자는 찬성이 60%에 가깝고 18~29세 연령층은 70%를 넘는다.
그러나 동성결혼 찬반은 정당과 이념의 경계가 모호하다. 민주당 지지계층도 보수성향 유권자는 반대하는 반면,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당원은 찬성한다. 또 오바마의 지지 기반인 흑인과 히스패닉 계는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법적 결합"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따라서 동성결혼 이슈는 득실을 헤아리기 힘들다. 오바마가 2008년 대선 때 동성결혼을 이해한다면서도 합법화에 반대한 까닭이다.
공화당 유력주자 롬니도 상원의원 때는 동성결혼에 긍정적이었으나 2003년 매셔추세츠 주지사 시절에는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공화당 복음주의 세력이 득세한 정치 풍향을 좇았다. 오바마의 변화를 그저 시류를 따른 게 아니라 용기 있는 선택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런 정치 전략을 넘어선 때문이다. 유권자 눈치보기에 매달려 어정쩡한 중간 지대에 머물지 않고, 과감하게 역사 흐름에 앞장서는 도덕적 리더십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선거 영향은 헐리우드 스타들의 기부금 잔치에도 불구하고 가늠하기 어렵다. 동성결혼 이슈에 이해가 걸린 게이 레스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는 헐리우드를 비롯해 백인 엘리트 계층에 원래 많다. 전체 유권자의 '표심'과 거리가 있다. 다만 롬니 후보가 자칫'역사의 그른 쪽'에 줄 선 꼴이 될 수 있는 수세에 처한 것은 오바마의 소득으로 볼 만하다.
이쯤에서 주목할 것은 이슈 자체보다 오바마가 과감하게 이미지 변신을 꾀한 의미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동성결혼 합법화는 경제와 일자리, 이민 규제, 낙태 허용 논란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다. 그런데도 이걸 들고 나온 것은 국민의 일상적 삶과 동떨어진 정치에 대한 불신을 완화하려는 노력이다.
미국 정치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정략적 대결에 매달려 탐욕과 무능을 드러냈다. 변화의 희망을 안겼던 오바마도 갈수록 대중의 감성에 냉담하고 고고한 법학교수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논리와 웅변이 빛을 잃었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처럼 정감 있게 민심에 다가서지 못하면 재선이 어려울 것이란 경고가 뒤따랐다.
오바마는 백악관 연설 대신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프로그램에 출연,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를 밝혔다. 또 냉철한 논리를 접어두고 백악관 직원과 두 딸의 친구 가운데 동성결혼 부모들이 있고, 이들이 자녀를 훌륭히 돌보는 걸 알게 됐다고 자신의 입장 변화를 설명했다. 유권자의 감성을 움직이는 나레이티브(narratives)로 롬니 후보의 격한 '정권 심판'공세에 맞섰다는 관전평이다.
오바마의 몸을 낮춘 국민과의 대화가 얼마나 성공할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이미지 변신 노력은 격렬한 대선 승부를 준비하는 우리 정치인들도 잘 새길 만하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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