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65)씨는 지난해 12월 부인(65)이 갑작스런 심장수술을 받게 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2006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장씨는 토목설계사 일을 그만두고,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병원비로 900만원이라는 목돈을 만들 형편이 안 됐다. 살림이 어려운 자녀들이 무리해서 500만원을 보탰지만, 나머지는 사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장씨는 월 5%의 고금리 사채로 300만원을 구했다.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60세 이상 연금수급자에게 낮은 이자로 생활안정자금을 빌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씨는 국민연금 실버론 500만원을 신청, 사채도 갚고 병원비도 충당했다. 장씨는 "담보 없이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당일날 바로 입금해 줘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이 2일부터 연금수급자를 대상으로 저리 대출을 해 주는 국민연금 실버론을 실시한 지 10여일만에 장씨와 같은 노인들의 대출신청이 폭주했다. 14일까지 1만6,303명이 문의를 했고, 이 중 2,525명이 100억7,330만원을 신청했다. 소득이나 자산이 별로 없는 가난한 노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신청자들은 대부분 전ㆍ월세자금(62.9%)과 의료비(36.4%) 용도로 목돈을 찾았다. 평균 대부신청액은 395만원으로 전ㆍ월세자금 448만원, 의료비 304만원으로 나타났다. 100만원 이하의 의료비를 신청한 사람도 142명(5.8%)였다.
공단은 이 돈이 긴급히 필요한 목돈임을 감안해 대부 신청 당일에 1,026명(43.0%), 이틀 내에 1,984(83.2%)에게 대부금을 지급했다. 또 대출상담을 받은 이들 중 3,122명에게는 개인별 특성에 맞는 일과 건강, 주거, 대인관계, 여가 등 종합적인 맞춤식 노후설계 서비스도 제공했다.
김학길 공단 연금급여실 차장은 "도입 초기라 대기수요가 많았던 점을 감안해도 짧은 기간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신청을 했다"며 "노년층의 목돈 생활자금 수요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운용자금 연 300억원 규모의 국민연금 실버론은 60세 이상 수급자에게 의료비, 장제비, 전ㆍ월세자금, 재해복구비 등 긴급 생활안정자금을 대출해 주는 사업이다. 최고 500만원을 빌릴 수 있고 5년간 원금균등분할방식으로 나눠 갚으면 된다. 매년 5년만기 국고채권 수익률에 연동한 변동금리가 적용되는데 현재 이자율은 3.56%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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