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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오래된 친구들을 다시 만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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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오래된 친구들을 다시 만나며

입력
2012.05.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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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축제에 어울리는 계절이다. 내가 오래전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러했다. 최루탄과 사복 경찰들과 돌멩이와 강제 징집으로 얼룩졌지만, 대학의 캠퍼스는 5월에 가장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때 항상 축제가 열렸다. 캠퍼스의 나무들이 푸른 잎을 세차게 틔우기 시작했고, 우리는 젊은 목소리와 몸짓으로 그 푸름과 즐겁게 경쟁했다.

그때 내 기억에, 이 축제에 초대받은 다른 이들이 있었다. 졸업생들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졸업한 동문들을 그 축제의 현장에 초대하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었다.

이제는 제법 오래전 일이니, 솔직하게 말하겠다. 그때 스무 살의 나는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중년의 얼굴들이 왜 같은 모자를 쓰고 비슷한 정장을 입고 깃발 아래 모여 천천히 교정을 거닐었는지. 아, 용서하시라. 그때 스무 살의 내 눈에 그들은 모두 좀 우스꽝스러웠다. 걸걸한 그들의 웃음소리는 우리들의 젊고 밝은 노래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들의 검고 단정한 옷들 또한 우리들의 뜨거운 춤과 한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졸업 후에 저렇게 모여 어울리는 지루한 재상봉 행사에는 단연코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의 젊음에 대한 충성 서약 같은 것이었다.

그 후로 긴 세월이 흘렀다. 정말 긴 세월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긴 세월이 흐른 후, 나는 스스로 이 결심을 부수고 말았다. 올해 동문 재상봉 행사의 초청 서한이 배달되었을 때 솔직히 마음이 조금 두근거렸으며, 그때 모두 같이 만나자는 동창의 이메일에 완전히 결심을 굳히고 말았다.

그리고 엊그제 나는 5월의 캠퍼스로 달려갔다.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교정을 다시 거닐었고 우리를 지켜봐주던 그 나무들을 다시 만나 어루만졌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많은 건물이 새로 들어섰고, 우리가 주저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어둡고 작은 숲은 공원처럼 밝아졌으며, 고즈넉했던 몇몇 흙길들은 아스팔트를 새로 입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라고 우리가 공부했던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로 악수하고 포옹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모두 그대로였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이제 얼굴에 제법 주름이 졌고 머리는 빠지기 시작했으며 배가 나왔고 피부도 거칠어졌으며 화장은 더 진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너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라고 진심어린 거짓말을 하며 서로 웃어 보였다.

확실히 모든 게 달라졌다. 우리가 같이 부어 마신 맥주와 막걸리는 예전보다 훨씬 맛있는 것이었으며 우리의 식사와 안주도 그 시절의 가난한 접시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식탁은 더 이상 담배 연기로 자욱해지지 않았다.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고 네 이야기가 틀렸다고 시비를 걸지도 않았으며 집에 갈 택시비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지도 않았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많이 먹지 않았고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제 더 현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웃고 적당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조금 더 돈이 많아졌고 조금 더 돈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조금 더 탐욕스러워졌다. 서로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의 밥벌이에 대해서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염려했다. 통장의 잔액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구좌들이니까.

5월의 푸름과 아름다움은 그대로였지만 우리는 변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예전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험을 버리고 각자의 거실에 머무르기로 결심했으니까. 이마저도 대견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날 우리는 대학에 진학한 서로의 아들과 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입시에 실패하기도 했고 대학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들도 우리처럼 5월의 숲에서 젊고 높고 푸르고 순결한 인생을 꿈꿀 것이다. 그들은 그럴 권리가 있다. 그들의 패기가 우리의 노회함보다 진리에 가까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을 지켜주고 싶다. 5월이다. 저 끝까지 모두 푸르다.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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