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5월 15일 한국일보가 주관해 구성된 '신라오악(新羅五嶽)학술조사단'은 경북 양북면 봉길리 약 200m 앞바다에서 바다 속에 지어진 문무대왕릉을 발견했다.
사적 158호로 지정된 문무대왕릉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로 태어나 676년 당나라를 몰아내고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해 한반도에 남북국 시대를 연 신라통일의 영주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일명 대왕암이라 불리기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불에 태워 동해바다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왕위에 있을 때 동해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자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이 같은 유언을 남긴 것으로 삼국사기는 전한다.
화장된 문무왕의 유골은 동해 입구의 큰 바위에 장사를 지냈고 이로 인해 이곳은 대왕바위 또는 대왕암으로 불리게 됐다.
경북 경주 봉길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멀지 않은 바다 가운데 자연 바위로 이뤄진 작은 섬을 볼 수 있다. 세계 유일의 수중릉인 이곳은 썰물 때만 보이
는 작은 바위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돼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수로가 열려 있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 모양의 돌이 덮여있는데, 이곳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돼 있으리라 추정되기도 했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화강암인 큰 바위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난 부분은 인공이 가해져 가다듬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돼 대석의 안치 방법과 유골의 수장 여부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곤 했다. 2001년 3월 한 방송사에서 역사연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초음파탐지기 등으로 바위의 조직과 내부 수면을 조사한 결과, 대왕암 내부나 아래에 유골이나 부장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수장보다는 화장 후 뼈를 묻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됐다.
신라의 한 설화는 문무왕이 죽은 후 용이 되어 나타나 아들 신문왕에게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주어 불기만 하면 세상의 풍파를 잠재웠다고 전하고 있다. 신문왕은 용이 된 부왕을 위해 바다물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감은사를 지었고 언덕에 정자를 세워 그 덕을 기렸다고 한다. 문무왕의 시신을 대왕암에 매장했건 또는 산골(散骨)했건 일반인들에게 그 문제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며 바위섬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일출에 더 관심이 있지 않을까.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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