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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래는 고양이처럼'/ 30대 커플의 '성장통'…시간과 사랑에 질문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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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래는 고양이처럼'/ 30대 커플의 '성장통'…시간과 사랑에 질문을 던지다

입력
2012.05.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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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에게 삶은 무료하기만 하다. 어제 같은 오늘이 이어지고 오늘 같은 내일이 기다릴 것만 같다. 그래도 장래와 꿈이라는 단어는 유효기간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4년째 동거 중인 30대 중반의 제이슨(해미쉬 링클레이터)과 소피(미란다 줄라이)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은 젊음에 기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소진한다. 수명이 6개월 남짓 남은 안락사 위기의 고양이를 입양키로 결정하기 전까지 두 사람에게 시간은 잉여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삶의 한 결정으로 문득 세월이 던져주는 위기를 절감하게 된다.

미국 예술영화 '미래는 고양이처럼'은 시간에 관한 영화이고, 사랑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시간과 사랑이 얽혀서 이야기의 형상을 그려가는 영화이니 자연스레 삶을 화두로 다룬다. 91분이라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긴 여운을 남긴다.

고양이 입양을 결정한 뒤 제이슨과 소피는 각자 하던 일을 그만 둔다. "5년 뒤면 마흔이고 그 뒤 인생은 일종의 잔돈 같은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환경에 무관심하던 제이슨은 충동적으로 나무심기 운동 단체에 가입하고, 소피는 한달 동안 자신이 춤추는 모습을 매일 동영상으로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려 한다. 새로운 변화로 늙음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려던 두 사람은 결국 일상을 탈출하지 못한다. 불안감에 휩싸인 소피는 우연히 알게 된 중년남자와 외도를 감행하고, 제이슨은 소피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절박감에 시간을 멈추게 하려 한다.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오가며 매력적인 감수성을 발산한다. 시간이 멈추는 장면이 나오고 시간이 갑자기 가속도를 내는 등 상식에 위배되는 모습을 묘사하며 시간의 상대성을 이야기한다. 티셔츠가 홀로 주인을 찾아 나서는 장면이 등장하고 고양이의 사색 어린 독백이 스크린에 흐르기도 한다. 권태에 빠진 한 커플의 모습을 완만한 호흡으로 전하는 흔한 저예산영화들과 다른 면면은 그리 별스럽지 않은 소재를 다룬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 속 고양이 '꾹꾹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야생에는 시간 개념이 없어요. 죽느냐 사느냐, 뭘 먹고 사냐 이런 것만 중요하죠. (제이슨과 소피가 입양을 결정하면서) 이젠 제게 새로운 게 생겼어요. 바로 기다림…." 60년 가량 아내와 해로한 한 노인이 제이슨에게 "(동거)4년이면 얼마 안 됐군"이라고 말하는 장면과 맥락을 같이 하는 대사다. 1분 뒤 벌어질 일도 알 수 없는 게 삶이니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순간에 충실하고 만족하라고, 그게 바로 행복이고 인생 아니겠냐고 영화는 말하려 한다.

행위예술가 출신 미란다 줄라이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했다. 그는 주연을 겸한 장편데뷔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2004)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장편 영화 두 편 이하 연출경력을 지닌 감독에게 주는 일종의 신인상)과 선댄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미국 독립영화계의 샛별이다. '미래는 고양이처럼'은 줄라이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줄라이는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외도에 관한 무대 공연을 하다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파고들어보고 싶어 시나리오로 옮기게 된"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속 소피처럼 "30대에 접어들자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히 깨달았다. 이런 게 바로 어른이 됐다는 증거 아닌가 싶다"고도 말했다. 그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간의 흐름대로 매 순간과 매일을 살아가는 것 또한 시간을 되돌리는 것 못지 않게 공상과학적이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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