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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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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31>

입력
2012.05.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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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리의 매 치는 소리와 애고대고 울음소리에 마당이 시왕전으로 변하더니, 곤장 열 대씩에 혼절한 죄인들을 다시 각자의 방으로 입감시키자 기침 소리는커녕 숨소리마저 잦아들어 그야말로 적막 천하가 되었습니다. 끼니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밥은 고사하고 물도 주지 않았지요. 밤이 제법 이슥하여 두런두런 옆 사람과 말을 나누게 되었는데, 이 서방이 왼쪽의 맨 끝자리라 옆 칸 사람들과 장목 칸살 사이로 말을 건넸던 모양입디다.

영동 골에 무슨 변고가 있습니까?

댁들은 웬일로 잡혀왔소?

이신통이 물으니 그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되묻는 것이 우리가 잡혀 들어온 게 더 궁금했던 모양이지요.

우리는 장꾼들로 주막에서 술 먹고 놀다가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지요.

허허, 그렇다면 뭘 걱정이오? 아마 내일이 지나면 모두들 나갈 거외다. 그 대신에 노잣돈 남은 게 있으면 이속들에게 모두 털어주어야 할게요.

아니, 죄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인정전을 줘야 하우?

신통이 물으니 그 사람은 다시 웃었지요. 심약한 자 같았으면 산발하고 발에 차꼬를 차고 목에는 칼을 쓰고 있으니 벌써 초주검이 되어 있을 터인데, 제 집 사랑에서 손님 맞듯 음성이 침착하여 곁에서 듣고 있던 나도 좀 놀랬소이다.

우리 골 여러 동리에서 사람을 모아 관문을 범하였으나, 내가 소두(疏頭)를 자처하였으니 필경 대역죄로 죽게 될 거요. 내가 죽고 나면 형문이 모두 그칠 터이니 당신들이야 무슨 걱정이 있겠소. 이속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무고한 사람들까지 무조건 잡아두었다가 돈이나 쌀말이라도 뜯어내자는 수작이겠지요.

곁에 있던 저는 그 사내의 기개에 마음이 동하여 물어보았지요.

대체 무슨 연유로 작당하여 관문을 범하였단 말이요?

지금 세상 어디서나 향청이 썩어서 민고(民庫)는 수령의 판공비를 대는 돈줄이지요. 감사의 순시에 따른 지출에다, 신구 수령이 갈릴 때의 노자며 수행비 잔치 비용에다, 아전들의 출장비, 심지어 수령 가족의 생신연이니 손님의 접대비도 모두 민고에서 댑니다. 민고는 향청에서 맡고 있으나 그 돈은 모두 백성들에게서 뜯어낼 수밖에 없지요. 거기에다 좌수니 별감이니 하는 향임(鄕任)을 사고파는데 그 자릿값이 육칠백 냥씩 한답디다. 고을마다 어슷비슷하여 어느 고장에서는 다섯 달 동안에 무려 열세 번이나 향임이 갈렸고, 또 어디선가는 일 년에 좌수가 열두 번, 별감이 스무 번이나 갈렸답디다. 우리 계서는 향임이 여섯 달 동안에 여덟 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수령들은 판공비에다 매향으로 돈을 뜯고, 향임들은 재임 동안에 들인 돈을 뽑으려고 온갖 수단을 부리기 마련이랍니다. 논밭이라도 있는 고장에서는 죽지 못해 참고 살지만 우리네 같은 산간 마을은 밤도망하는 양민이 하나 둘이 아닙죠. 그러니 남은 사람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내가 동네마다 통문을 돌린즉 하루 만에 이백여 명이 동참하여 향청을 때려부수고 현감을 잡아 징치하려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모자를 미리 정하는데 두셋이 민란을 일으키고 죽어나가면 감영에서도 조정의 고과(考課)가 두려워 몇 년간은 가렴주구를 못 하지요. 저 옆 칸에 내 식구들이 함께 잡혀와 있지만 내가 참형을 당하면 저들은 나갈 것이외다. 이제 산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으니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소?

이 서방과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잠자코 듣기만 했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그들은 오라를 지고 동헌 앞으로 끌려갔고, 우리 다섯 사람은 향청으로 가서 사령이 지켜선 가운데 호장의 문초를 받았지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민변이 일어난 곳에서 기찰에 항거했으니 벌금을 내든가 태형을 맞든가 택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벌금도 제각각이어서 어떤 장돌림은 지게에 얹은 물건 전부, 또 어떤 자는 열 냥, 이신통과 저는 각각 삼십 냥씩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서방이 광대물주를 하는 자이니 그 정도는 뜯어낼 수 있겠다고 여긴 것이며, 저는 의관 행색이 다른 장사치들보다 깨끗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뒤로 두루마기에 갓 쓰기를 꺼리는 바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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