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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대한민국 진보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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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대한민국 진보는 죽었다

입력
2012.05.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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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 사건을 연상케 하는 통합진보당 내부의 폭력 사태는 낡은 진보의 종언을 예고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12일 4ㆍ11총선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 수습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최악의 폭력 사태가 발생하자 '낡은 진보의 몰락'이라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투표 부정을 저지른 데 이어 폭력까지 동원해 입장을 관철하려는 당권파의 패권적 행태가 진보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진보가 대수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주문도 쏟아지고 있다.

폭력 사태는 이날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된 회의 도중 당권파가 경쟁 부문 비례대표 후보자 총사퇴와 비상대책위 구성 등 수습책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공동대표인 심상정 중앙위 의장이 강령개정안을 통과시킨 직후 당권파 중앙위원과 당원 등 100여명이 몰려나가 단상을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조준호 공동대표는 머리채와 멱살을 잡히는 등 집단 폭행을 당했고, 유시민 공동대표도 폭행을 당했다. 천호선 통합진보당 공동 대변인은 "조 대표가 많이 맞았고 옷이 찢어졌다"면서 "유시민 대표도 조금 맞았고 옷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탈진한 조 대표는 13일 입원해 목∙허리 정밀 검진을 받았다.

양측의 충돌이 예상됐지만 이정희 공동대표는 회의 직전 "화합해서 당을 다시 세워달라"며 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가 폭력 사태를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회의가 시작된 뒤 나머지 공동대표들도 사퇴를 선언했다.

중앙위가 폭력 사태로 얼룩진 채 정회된 가운데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각기 지도부 구성을 추진하고 나서 통합진보당은 '이중 권력' 상황에 직면해 있다. 비당권파는 13일 저녁8시부터 전자회의 형태로 중앙위를 속개해 비대위 구성 방안 등 미처리 안건에 대한 표결에 나섰다. 14일 아침10시까지 진행되는 전자 투표를 통해 안건이 통과되면 강기갑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를 구성할 방침이다. 이에 맞서 당권파는 15일 김선동 의원을 원내대표로 뽑아 별도 지도부를 구성한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끝내 갈라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종북주의에 매몰돼 절차적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당권파의 막가파식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1987년 폭력배를 동원해 통일민주당 창당 행사를 방해한 사건에 빗대 '진보판 용팔이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폭력 사태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도 흔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진보 정치는 교조적 이념의 굴레를 벗고 양극화 및 복지∙환경∙노동 문제 등을 해결하는 '생활 진보'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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