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의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는 낡은 진보 정치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몸싸움과 욕설, 고함이 난무했고 공당 대표들을 겨냥한 집단 폭행도 가해졌다. 당권파는 권력 투쟁의 야욕에 불타 스스로 벌거벗은 채 치부를 드러냈고 그들이 내지른 주먹과 발길에 진보 정치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이날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오후2시에 시작된 회의가 당권파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로 6시간 넘도록 첫 번째 안건인 강령개정안 조차 의결하지 못한 채 공전을 계속하던 상태였다. 9시40분께 공동대표인 심상정 중앙위의장이 장내를 정리한 뒤 강령개정안에 대해 "반대 있습니까"라고 묻자 회의장에서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이어 심 대표가 "그럼 만장일치로 가결됐다"며 의사봉을 두드리자 마자 사방에서 몰려든 당권파 당원들과 중앙위원 100여명이 단상으로 뛰어올라 대표단을 순식간에 덮쳤다.
단상에 난입한 당권파는 심상정 유시민 조준호 공동대표를 향해 돌진했다. 진행요원인 당직자들이 막아서면서 주먹과 발길질이 난무했다. 단상으로 물병도 날아갔다. 당권파 당원들은 특히 진상조사위원장인 조준호 공동대표의 멱살과 머리채를 잡고 주먹과 발길로 가격하는 등 집중 공격했다. 유 대표와 당직자들은 심 대표를 몸으로 감싸고 보호했다. 덕분에 심 대표는 봉변을 면할 수 있었지만 심 대표를 감싼 유 대표의 등을 겨냥한 주먹질도 있었다. 10여분 동안 계속된 난투극 속에서 대표단들은 당직자들의 도움을 얻어 겨우 피신할 수 있었다.
대표단이 피신한 뒤 당권파 당원과 중앙위원들은 점령군이라도 된 듯 단상 아래를 점거하고 "불법 중앙위 해산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농성에 들어갔다. 11시30분쯤 유시민 대표와 함께 단상에 오른 심상정 의장이 "더 이상 정상적인 회의가 불가능해 무기한 정회를 선포한다"며 회의 중단을 선언했다. 이어 당권파 당원과 중앙위원들은 다시 단상으로 뛰어올랐지만 대표단이 철수하자 목표를 잃었다는 듯 뿔뿔이 흩어졌다.
이날 회의 시작부터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600여명의 중앙위원이 자리한 중앙홀은 물론 300여명의 당원들이 자리한 참관인석에서도 연신 야유와 고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당권파 중앙위원들은 국민참여당계 중앙위원의 적법성을 문제 삼으며 지연 전술로 회의를 방해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세 차례나 정회가 선포됐다. 당권파인 우위영 공동대변인은 "국민참여당 출신 중앙위원 50여명이 불법적으로 교체된 의혹이 있다"며 심 의장의 회의 진행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비당권파의 천호선 공동대변인은 "통합 당시 중앙위의 구성은 각 주체의 자율에 맡겼다"며 맞섰다.
회의가 시작된 지 2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안건과 회순이 통과됐고 다시 당권파 중앙위원의 필리버스터가 이어지자 심 의장은 1차 정회를 선포했다. 오후4시25분 속개된 회의장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회의장 뒤편 참관인석을 가득 메운 당원들은 회의 중간에 일어나 박수를 치며 "불법 중앙위 중단하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치기 시작했고 일부 당권파 중앙위원 30여명도 따라 일어나 시위에 동참했다.
하지만 대표단과 나머지 비당권 중앙위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심상정 유시민 조준호 공동대표들은 1시간 넘게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심 의장은 결국 5시55분에 2차 정회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6시53분쯤 속개된 회의에서도 당권파 중앙위원의 필리버스터는 계속됐다. 이어 심 의장이 강령개정안 토론을 진행하려 하자 당권파 당원 30여명이 단상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세 번째 정회가 선포됐다.
고양=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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