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키맨'으로 지목된 진경락(45ㆍ구속기소)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증거인멸의 '윗선'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알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사찰 사건의 전모를 아는 핵심 인물로 꼽혔지만 입을 다물고 있던 진 전 과장이 이 같은 진술을 함에 따라 검찰 수사가 새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13일 검찰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최근 조사에서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첫 언론 보도가 나온 2010년 6월 민정수석실에서 이영호(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불러 증거인멸을 지시했고, 이 전 비서관은 최종석(42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이를 실행에 옮길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진 전 과장은 불법사찰 사건으로 징계를 받자 지난해 2월 중앙징계위원회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민정수석실의 K, C비서관이 이 전 비서관에게 증거인멸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밝혔다가, 자신의 변호사 비용을 대준 윗선의 집중적 회유로 돌연 입을 다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달 13일 검찰에 구속된 후에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진 전 과장이 이처럼 수사에 비협조적이던 태도를 바꿔 2년여 전 탄원서 내용을 사실상 시인한 배경에 대해서는 "구속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포자기한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을 재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은 민정수석실의 증거인멸 개입 의혹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달 24일 진 전 과장의 후임인 정일황 전 과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이튿날 소환 조사한 것은 그 일환으로 풀이된다. 정 전 과장은 불법사찰 사건 청와대 개입설을 폭로한 장진수(39)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을 만나 "민정수석실에서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며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정수석실 개입에 대해서는 진 전 과장은 최종석 전 행정관으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라고 말하고 있는데, 최 전 행정관은 '내가 지어낸 얘기'라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 전 행정관은 2010년 7월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의 1차 수사 무렵 민정수석실에 파견돼 있던 A검사를 수 차례 만나 "내가 입을 열면 증거인멸에 개입한 민정도 무사할 수 없다"고 위협하며 구명 로비를 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A검사가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 전 행정관은 당시 한 차례 방문조사만 받고 무혐의 처분됐다.
본보는 관련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A검사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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