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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서"… 보험금 담보로 빚내는 가구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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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서"… 보험금 담보로 빚내는 가구 늘었다

입력
2012.05.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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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이 좋아하는 요구르트도 끊고, 휴대폰요금제도 낮췄어요. 아이는 먹을 게 없나 자꾸 냉장고 문을 여닫는데, 정말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더라고요."

주부 이모(36)씨는 3년 전부터 다달이 45만원씩 붓던 변액보험을 담보로 350만원을 빌렸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후 보장용이라던 애초의 굳은 맹세는 온데간데 없고, 생활비가 궁할 때마다 소액 보험약관대출로 겨우 살림을 땜질하고 있다.

남편 연봉이 5,000만원에 육박하니 적은 월급은 아니다. 그래도 이씨는 "매달 주택담보대출 75만원과 보험료 45만원, 부식비와 관리비 100만원, 카드결제 80만원 등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장 한 번 보면 최소 3만원이 들어요. 유통기간이 지나면 버렸던 음식도 요즘엔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어요. 한창 자랄 아이라서 잘 먹이고 싶은데 너무 속상해요." 더는 아낄 여지가 없을 만큼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내릴 줄 모르는 장바구니 물가는 이씨의 노력을 비웃는다.

이씨 부부는 요즘 대출을 끼고 산 소형(21평)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옮길까 생각 중이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려면 집을 팔 수밖에 없는데, 거래가 끊긴데다 2년 거주기간을 채우지 못해 세금도 고민이에요." 아이 간식비라도 벌 요량으로 한동안 쉬던 일을 시작했지만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하나 있는 아들 보살필 시간도 모자라니, 둘째를 낳으려던 계획은 접어야겠죠."

프리랜서 강사 김모(40ㆍ여)씨는 작년 말 12년간 납입(월 5만원)한 보험에서 5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율이 연 6% 정도라 이자는 다달이 내고 있지만 원금은 갚을 형편이 못 된다. "설사 못 갚더라도 보험금에서 떼면 되니까, 남편 수입이 끊기고 제 수입도 일정치 않아 몇 달간 생활비로 썼어요." 아직 다른 빚은 없지만 당장 생활이 쪼들려 매달 빠져나가는 몇 만원의 이자마저 아쉬운 처지다.

미래와 노후를 위한 보험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당장 먹고 살 생활비를 마련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13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초 31조7,000억원 수준이던 보험약관대출은 꾸준히 늘어나 불과 1년 새 3조원 이상 급증한 약 35조원을 기록했다.

300만~500만원의 소액대출이 주류를 이루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가구가 보험을 끼고 빚을 내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구당 300만원이라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1년 새 100만 가구 이상 늘어난 셈이다.

보험약관대출(또는 계약대출)은 계약자가 자신이 가입한 보험상품의 해약 환급금액을 담보 삼아 받는 대출(환급금의 70~80%선)이다. 수시로 빌릴 수 있고 금리도 신용대출보다는 싼 편이라 상대적으로 유리하지만, 당장 한 푼이 급한 터라 이자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제 돈 맡기고 잠깐 현금을 융통하는 것치고는 이자가 너무 비싸다는 보험 가입자들의 불평이 쏟아지자, 금융당국도 최근 보험사에 자율적 인하를 권고하고 나섰다. 여론과 압박에 밀려 최근 생명보험회사들이 약관대출 금리를 줄줄이 내리고 있지만, 금리의 잣대가 되는 가산금리(평균 연 2%대)가 여전히 은행의 예금담보대출(1.2~1.5%)보다 높아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많다.

보험에도 들지 못한 이들은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주부 이모(28)씨는 아이가 생겨 양육비가 추가로 드는 바람에 전세보증금의 60%인 3,000만원을 연 10% 금리 조건으로 대출받았다. 전세보증금담보대출은 그나마 집 주인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빌릴 수도 없다.

경기 부진으로 가계마다 호구지책 마련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대부업체 이용실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작년 하반기 69개 대부업체의 신규 대출 현황에 따르면 2명 중 1명(50.9%)이 생활비 충당 목적으로 돈을 꿨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하반기(33.5%) 이후 최고치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회사원들의 대부업체 이용비중은 63.8%로 전년보다 7%포인트나 늘었다. 다달이 일정한 돈을 벌고 있지만 당장의 생활고에 시달려 급전이 필요한 가구가 그만큼 늘었다는 방증이다. 이래저래 살기 팍팍한 세상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아람 인턴기자 (숭실대 글로벌미디어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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