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외국계 기업 CEO들은 운신 폭이 좁다. 본사 방침도 따르랴, 현지 경영사정에도 맞추랴, 그러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단명(短命)CEO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방일석(48) 올림푸스한국 사장은 2000년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13년째 이 회사 CEO를 맡고 있다. 작년엔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본사의 집행임원이 됐고 지난달 말 연임까지 성공했다. 한국법인 대표를 넘어 일본 본사의 최고경영진 멤버가 된 것이다.
올림푸스는 세계적 광학기기전문기업. 국내에 익숙한 카메라를 비롯해 현미경 내시경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방 사장의 롱런비결은 당연히 실적. 설립 이래 두자릿수의 신장률을 기록했고, 작년엔 40%나 늘어 2,000억원을 돌파했다. 방 사장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 같은 호실적의 이유에 대해 "현지화된 독립경영이 좋은 성과를 낳는다"고 잘라 말했다.
우선 투자율이 높다. 올림푸스한국은 순익의 4%만 일본 본사로 배당 송금한다. 나머지 96%는 한국에서 재투자된다. 외국계 기업으론 파격적으로 높은 재투자 비율이다. 방 사장은 "번 돈을 고스란히 본사로 가져가는 회사는 결코 성공하기 힘들다. 이 점은 일본 본사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내 사업은 거의 100%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추진된다. 예컨대 지난해 말부터 평판디스플레이 검사장비를 국내 중소기업과 함께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조달하고 있는데 방 사장은 "한국 중소기업과 같이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신뢰감도 쌓이고 빠른 국내 애프터서비스도 가능해져 사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올림푸스한국 법인 출범 당시, 콤팩트카메라와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사이에서 '하이브리드 디지털카메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현지화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지난 2010년 올림푸스한국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에 콘서트홀이 완비된 올림푸스 타워를 지었다. 본사지원 없이 100% 자체자금으로 충당했는데, 이 역시 독립경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방 사장은 삼성전자 출신. 일본 주재원이었던 2000년1월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반도체 거래선이던 올림푸스측은 그에게 신설될 한국지사 책임자 자리를 제의했다. 그는 경영자율성 보장을 조건으로 한국지사 사장을 맡았다. 지난해 올림푸스 일본 본사는 분식회계사건으로 창사이래 최대위기를 맞았는데, 그런 만큼 한국법인의 성공을 더욱 신뢰한다는 것이다. 방 사장은 "올림푸스한국은 단순히 외국계 기업의 현지법인이 아니다. 한국에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독립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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