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요금 인상을 둘러싼 서울시와 메트로9호선 간 갈등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요금 인상안을 보류하는 사과문까지 게재하며 백기투항하는 듯 했던 메트로9호선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요금 자율 인상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2월에 150원 인상된 지하철 요금을 또 다시 500원이나 올리겠다니, 민생고와 물가 급등에 시달리는 국민들 입장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요금 인상이 강행되면 올 들어 서울 지하철 요금은 73%나 폭등하는 셈이다. 시민단체들이 특혜 의혹 규명을 위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국민들의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돈 먹는 하마'가 된 민자 사업이 메트로9호선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분석에 따르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진행한 임대형 민간투자사업으로 향후 20년간 부담해야 할 재정 규모가 40조원에 이른다. 턱없이 부풀려진 수요 예측 탓에 적자가 불가피한 구조인데도 '최소운영수입'을 보장해준 결과다.
재협상을 통해 보장 한도를 합리적 수준으로 낮추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민간 기업과 정부가 법에 근거해 체결한 계약을 되돌리라고 요구하긴 어렵다. 지금 잣대로 보면 불리하게 체결된 계약이 분명하더라도, 당시엔 그럴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민간투자사업이 본격화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4월부터다. 당시 개정된 민간투자법은 정부 고시 민자사업에서 적자가 나면 운영 기간 중 적자를 보전해주도록 했다. 당시는 금리가 20%대까지 치솟았고 부족한 재정을 보완하기 위해 민자 유치가 절실하던 시절.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이 민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과도한 '당근'을 제시하며 조급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이런 낭패를 자초한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선 한번에 목돈(세금)을 들이느냐, 아니면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이용료를 부담하느냐의 차이인데,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목돈보다 훨씬 더 많은 혈세가 투입되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정부 또한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2009년 10월 최소운영수입 보장제도를 없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혈세 퍼주기 논란은 생기지 않는 걸까.
사실 지금도 민간투자사업과 국가(지방정부)사업의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재정운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총 사업비 500억원(국고 300억원 포함) 이상 사업을 대상으로 한 예비타당성조사다. 첫 단추를 잘못 꿰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요 예측이 과장돼 사업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 사업도 정치적, 정책적 개입을 통해 사업성 있는 것으로 둔갑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정부가 도입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인데, 국가재정법상 사업 타당성이 낮은 사업을 추진해도 위법이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사전 조사를 통해 예산 낭비를 막겠다는 법 취지와는 달리, '국가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에 대해선 면제 규정을 둬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고 진행되는 사업도 허다하다. 무려 22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사업 추진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셈이다.
대선 공약이었던 동남권신공항의 경우 경제성이 낮다는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을 백지화했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가면 '돈 먹는 하마'신세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동남권신공항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며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여야의 선심성 개발 공약은 난무할 것이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이나 동남권신공항처럼 경제성과는 무관하게 수십 조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정치인들이 대규모 국책사업을 표심 얻기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메트로9호선을 막을 수 있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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