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다 줄행랑 놓는 녀석에게‘야! 너 거기 안 서!’라고 하면 더 꼭꼭 숨어서 피우란 뜻입니다. 정말 훈계할 작정이라면 이름을 넣어줘야죠. 가령 ‘야! 홍00, 너 거기 안 서!’라는 식이죠.”
이상곤(54) 경기 의정부고 교사의 별명은 ‘학생 이름 외는 귀신’이다.
의정부, 양주 등 경기 동북부 지역 고교생들이 그를 모르면 간첩이다. 이 교사는 “이름을 불러 세웠는데도 계속 도망치는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교편을 잡은 지 올해로 24년인 중견 교사에게 제자 이름 기억하기는 나름의 학생 지도 노하우인 셈이다. 학생들 사이에 흔히 ‘저승사자부(部)’로 불리는 학생부만 근무하면서 쌓인 그만의 ‘비법’이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기억력은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들 듣다 보니 애들 이름만큼 외우기 쉬운 것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학생 지도 방법은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효과는 대단했다. 8년 전 이 교사가 한 중학교에 근무할 때 가르쳤던 김지은(24)씨는 “선생님은 학생 집안사정까지 꿰고 말을 걸었는데, 모두들‘저 선생님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가장 문제아가 많은 반이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고교 진학을 했다”고 설명했다.
많지 않은 말수에 시커먼 얼굴과 무뚝뚝한 표정, 아마추어대회 심판 자격을 갖출 정도의 복싱 실력 등 ‘호랑이 선생님’조건을 두루 갖춘 이 교사는 “다정다감한 교사가 인기긴 하지만 엄격함도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문제 학생들은 적시적소에 핵심을 찌르는, 엄한 말 한 마디에 목말라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뼈저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초임 교사 때인 21년 전의 일. 성탄절을 즈음해 의정부 지역 다른 교사들과 합동지도에 나섰다가 해적판 CD노점을 하고 있는 제자를 만났다. 70일 이상 무단 결석해 퇴학 당한 학생이었다.
“‘여기서 뭐하냐’고 묻자 ‘선생님이 더 혼을 내줬으면 이러고 있지 않을 것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어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그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 사전엔 퇴학이란 없다’는 다짐을 한 것도 그때였다.
그는 “중고생들은 핸들이 조금만 돌아가도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를 내는 과속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며 “작은 관심이지만 그 관심의 결과는 엄청나다”고 했다. 이 생각은 그의 교사 생활을 피곤하게 했다. 서울, 부산, 대전, 전남 목포, 강원 고성 등 전국을 누비며 가출 학생을 찾아내 학교를 마치게 하거나, 유흥가, 집창촌 등에서 건져 올린 제자들이 숱하다.
이 교사는 이런 20년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녀석들이 전부 사회서 자리를 잡더니 요즘엔 결혼주례 요청으로 괴롭힙니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아니겠습니까. 만사 제쳐두고 가야죠.”
상복도 겹쳤다. 올해의 신일스승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교법인 신일학원은 12일 서울 미아동 신일캠퍼스에서 열린 제11회 신일스승상 시상식에서 이 교사를 비롯해 전호규(62) 경기 여주 오산초교 교사, 김갑성(57) 경기 부천남초교 교사, 남준희(58) 서울 상문고 교사, 박미연(51) 서울공연예술고 교사, 이금영(57) 서울 성베드로학교 교사 등 스승상 선정자 7명에게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고 격려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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