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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률 교수팀 이족 보행 익룡 발자국 화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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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률 교수팀 이족 보행 익룡 발자국 화석 발견

입력
2012.05.1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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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룡의 보행 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2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해부학자 조르주 퀴비에는 독일에서 1784년 발견된 날개 달린 화석을 '테로덱틸(Pterodactyle)'이라 이름 붙이며 익룡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테로덱틸은 프랑스어로 '날개 달린 발가락'이란 뜻이다. 그는 이 뼈 화석을 근거로 익룡이 두 발로 걸었다고 주장했다. 긴 논쟁의 시작이었다.

이후 학자들은 각자가 발견한 뼈 화석을 갖고 익룡이 두 발로 걸었다(이족보행), 네 발로 걸었다(사족보행)는 서로 다른 주장을 폈다. 이렇게 의견이 엇갈린 것은 익룡의 온전한 뼈 화석을 발굴하기 어려워 일부분만 보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익룡의 뼈는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어있어 다른 공룡 뼈보다 쉽게 부식된다.

그러나 익룡 발자국 화석이 하나 둘 발견되면서 사족보행설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 50여곳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 화석은 모두 앞발자국과 뒷발자국이 2개씩 찍힌 네발 화석이다. 반면 이족보행설을 뒷받침하는, 뒷발자국만 찍힌 화석은 이제껏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족보행설이 거의 정설처럼 여겨진다.

익룡 전문가인 독일 베를린자연사박물관의 데이비드 언윈 박사 등은 익룡이 네 다리를 몸통 밖으로 벌려, 마치 악어처럼 엉금엉금 걸었다고 주장한다. 발자국 화석에서 오른쪽과 왼쪽 발자국 간의 평균 너비(100㎝)가 앞발과 뒷발자국의 거리(20㎝)의 몇 배에 달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익룡이 뒷발은 발바닥을 땅에 대고, 앞발은 세 발가락을 곧추 세운 채 걸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익룡의 앞발자국 화석을 보면 뒷발자국과 달리 발볼이 없고 세 발가락 자국만 있다.

그러나 김정률 한국교원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팀이 처음으로 확인, 이번에 '해남이크누스 가인엔시스'라 이름 붙인 익룡 발자국 화석은 사족보행설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경남 남해군과 사천시 일대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 60여점은 모두 기존에 알려진 익룡 뒷발의 특징(4개의 발가락 자국, 뾰족한 뒤꿈치)을 갖고 있다. 발자국의 너비 대비 길이 비율(1.9~2.5)도 이미 발견된 익룡 뒷발자국의 비율(2)과 유사하다. 하지만 연구진은 뒷발자국 부근 어디에서도 앞발자국이나 앞발자국이 지워진 흔적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오른쪽과 왼쪽 발자국 간의 평균 너비(20㎝)보다 보폭(80~100㎝)이 긴 점을 근거로 "이 익룡은 이족보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발자국 길이가 27.5~39㎝에 달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이들 발자국의 주인은 날개를 활짝 폈을 때 길이가 10m 이상인 대형 익룡일 것으로 추정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발자국 화석을 발견하지 못해 가설로 머물던 익룡의 이족보행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라며 "이 익룡은 타조처럼 다리를 곧추 세우고, 뒷발바닥을 지면에 맞대는 방식으로 두 발로 걸어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화석들은 경남 사천시와 남해군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에서 1990년대 발견됐다. 이번에 김 교수팀이 익룡 발자국으로 판명하기 전까지 일부 창조과학자들은 이 화석을 근거로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고 주장했다. 익룡 발자국이 사람 발자국과 비슷해 보이고, 화석 주변에 여러 육식공룡, 초식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많이 관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발자국은 발가락이 4개뿐이고 뒤꿈치도 뾰족하게 나 있다. 발가락 5개, 둥근 뒤꿈치, 발바닥 가운데가 아치 형태로 폭 파인 사람 발자국과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김 교수는 "가장 큰 발자국(길이 39㎝)을 사람 키로 환산하면 3m 가까이 된다"며 "이런 '거대 인간'이 살았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이 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됐다. 그는 "인류가 유인원에서 갈라져 독자적인 종(種)이 된 시기를 학계에선 700만년 전으로 본다"며 "발자국이 찍힌 시기는 원시인류가 살던 때보다 훨씬 전"이라고 지적했다.

청주=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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