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눈길 혹은 무관심 속에서도 무언가를 이루려면 기이한 용기가 필요하죠. 모두가 내가 잘못된 길로 간다고 말할 때도 나만의 별을 좇는 과정이 바로 내 인생의 여정이었습니다."
영국의 전방위 아티스트 빌리 차일디쉬(53)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기이한 용기'는, 말하자면 그 인생 여정을 응축한 전시다. 그가 아시아에서 여는 첫 개인전으로, 회화 작품과 레코드 및 책 표지 등 50여점을 선보였다. 11일 개막에 맞춰 내한한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차일디쉬는 화가이자 100여장의 앨범을 발표한 록 뮤지션, 동시에 40여권의 자전적인 소설과 시를 발표한 작가다. 인디씬에서 '개러지록의 대부'로 불린 그는 최근에는 2010년 바젤 아트페어와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의 컬렉션으로 화가로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이번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인생은 보통의 삶에서 늘 비껴나 있었다. 난독증으로 14세까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가 활동하는 음악, 미술, 문학 등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음정이 불안정해 성가대 입단도 거부당한 그는 17세부터 펑크록의 로커로 활동했다. 두 살 때부터 그린 수천 장의 드로잉으로 런던예술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칼리지에 입학했지만 제도권 미술교육에 반발해 결국 퇴학 당했다. 알코올 중독, 유년시절의 학대와 같은 불행한 개인사는 소설과 시로 적혔다.
그 때문인지 그의 화폭엔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프랑스 문호 루이 페르디낭 셀린,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등 불우한 개인사를 가진 예술가들이 담겨있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불행은 인생에서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감정 중 하나죠. 어떤 그림이든 제 자신이 표현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엘가와는 특히 공통점이 많습니다. 영국 태생인 것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점이 그렇죠. 해외보다 오히려 모국에서 주류에 끼지 못하고 멸시를 받았다는 점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근현대문학가인 이상과 이광수의 초상화도 한 점씩 그렸다. 한국 관람객한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는 느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는 그는 요즘 이광수의 소설 <무정> 영문판도 읽고 있다고 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여느 근대문학처럼 직접 대화하는 것 같고 나를 포용해주는 느낌이 있어 좋네요." 무정>
강렬한 원색과 심리 묘사가 담긴 구불구불한 붓질은 언뜻 뭉크나 고흐의 화풍과 닮았다. 그러나 물감 사이로 남아있는 누르스름한 리넨 캔버스의 여백은 미완성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차일디쉬는 "자아를 줄여가기 위해 그림은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면서도 "그러나 전시장을 한번 둘러보니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보이긴 한다"며 아이 같이 천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시는 6월 3일까지. (02)2287-350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