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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밤과 음악 사이' 김진호 사장 "8090 감성충전…추억에 목말랐던 그들의 아지트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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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밤과 음악 사이' 김진호 사장 "8090 감성충전…추억에 목말랐던 그들의 아지트 됐죠"

입력
2012.05.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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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가려면 타임머신을 타야 한다. 아주 먼 옛날은 아니고, 1980~90년대 대학가 근처의 한 술집쯤으로 해두자. 입구에 들어서면 헤드폰 낀 DJ가 뮤직박스에서 음악을 선곡 중이다. 나무로 만든 의자와 책상은 딱 국민(초등)학교 교실이 떠오른다. 자리에 앉으니 그 시절 즐겨먹던'뽀빠이'과자를 하나 준다.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 오래된 LP를 재활용했다. 안주도 통골뱅이 김치찌개 등 뭔가 친숙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90년대 인기드라마의 주제곡'걸어서 하늘까지'가 나오자 몇몇 사람이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격한 안무를 선보인다. 그러다 모든 테이블이 하나가 돼'세월이 가면'을'떼창'한다.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가 나오니 어느새 테이블의 경계가 사라졌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춤을 추고 건배를 외친다. 직업 성별 나이 따위는 이미 안중에 없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그 시절을 함께 한 세대니까.

이 곳의 이름은 '밤과 음악 사이', 줄여서 '밤음'이라고도 한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 사이에선 '밤음 모르면 간첩'소릴 들을 수 있다. 그만큼 홍대와 강남 일대의 명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오죽하면'밤음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 그럼에도 인기가 식기는커녕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요즘도 밤 9시가 넘으면 줄을 서 기다리는 대기자가 수백 명. 어느새 지점 수가 전국에 13개로 늘어났다. 옛날 노래 틀어주는 음악주점이 '대세'가 된 비결은 뭘까.

그 모든 것은 김진호(46ㆍ사진) 대표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주식회사 밤과 음악 사이의 대표이자 밤음의 창시자다. 그는 사례 하나를 들려줬다. 지난해 건대 앞에 밤음을 모방한'밤이면 밤마다'가 생겼다. 하지만 장사가 안돼 2달도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고 그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그리고 나서 밤과 음악 사이로 이름을 바꾸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는 "간판만 바꿨는데 대박이 났다고 신기해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며 "밤음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노하우가 쌓여 탄생한 곳"이라고 말했다.

사연은 그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2년간 서울의 유흥업소를 주름잡은 유명 DJ 출신이다. 김 사장은 "이 얼굴을 갖고 유흥가 디제이로 성공했으니 대단한 실력이 있었던 것"이라고 웃었다. 실제로 당시 좀 노는 언니오빠들은 '추억의 롤라장', '터치바이터치' 등 그가 믹싱한 앨범 한두 개쯤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룹 애즈원 등을 배출한 기획사의 대표를 맡아 직접 음악계에 뛰어든다. 당시 리쌍 1,2집과 럼블피쉬 등의 음반을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반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드는 것을 느끼고 2000년대 들어 의류사업으로 전업, 꽤 쏠쏠한 수익을 거둔다.

사업이 잘되자 직원수가 늘고 회식자리도 잦아졌다. 하지만 회사나 집 근처엔 늦게까지 하는 술집이 없었다. 그때 동네에 망한 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그는 이곳을 싸게 사 지인들과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난로를 들여와 고구마를 굽고 밤새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가 소장한 수천 장의 LP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입구 미닫이문에는 작은 간판을 걸었다. 그는 "우리가 주로 밤에 모여 술을 마시고 음악을 좋아하니, 별 생각 없이 밤과 음악 사이라고 정했다"라고 말했다. 이 때가 2005년 12월. 밤음 1호점은 이렇게 탄생했다.

개인 놀이터로 시작했는데, 자꾸 사람들이 찾아왔다. 분위기가 좋다며 잠시 앉아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예 장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15년 다니던 골뱅이집에 가서 레시피를 사고, 20년 단골 두루치기 집에서 재료를 공급받아 안주를 공급했다. 그는"김현식 박인희 노래가 나오는 술집이라고 소문이 나 대학교수들까지 찾아와 줄을 섰다"고 회고했다. 2008년 홍대에 2호점을 내면서 본격적인 바람을 탔다. 이 곳에선 젊은이들의 특성에 맞게 서태지와 듀스 노이즈 클론 등의 노래를 주로 틀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 춤을 추는 고고장 분위기가 형성됐다. '밤음세대'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다.

그 스스로도 손님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걸 즐긴다. 반쯤은 취미로 시작한 일인만큼 자신도 재밌게 노는 게 목적이고, 손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저가 정책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홍대 본점 1층에 13개 테이블이 있는데 기분이 좋아'복분자 돌려!'를 외치면 모두 테이블에서 찾아서 술을 권하고 친구가 된다"며 "13만원 내고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이 곳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곳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별도의 룸이나 예약석 같은 건 없다. 그는 "좀 더 일찍 들여보내 달라고 '빽'을 쓰는 사람도 많지만 재벌가 자제나 외국의 유명 뮤지션이 찾아와도 별 수 없다"고 말했다.

밤음의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 그는 "지점이 빠르게 늘고 있어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최소 연 100억원은 넘는다"며 "브랜드 가치로 치면 이미 수백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안에 광주나 대전 대구 등에 최대 30개까지 지점을 늘릴 계획이고 중국 상하이 등 해외진출도 꾀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30~40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제대로 된 놀이문화를 즐기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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