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남을 속이기도 하지만 보통 남에게 잘 속곤 하는 나다. 장점이자 단점이 사람에 대한 의심이 앞서지 않는다는 건데 이만큼의 살아옴 속에 뒤통수 얻어맞는 상황이 제법 생기기도 하더란 말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 하나는 내게 자기 아빠가 흰 곰이 그려져 있는 상표의 밀가루 회사 사장이라더니 우윳값을 꿔달라는 게 아닌가.
엄마가 첩이라는 말로 날 입 닫게 한 친구에게 한동안 내 용돈이 고스란히 빨려들어갔더랬지. 한꺼번에 갚아준다는 사장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사장의 운전기사더러 아빠라고 부르던 친구의 거짓말은 결국 돈 때문이었던 것.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는 친구 하나가 아침부터 엎드려 펑펑 울기에 물었더니 엄마가 위암이라는 게 아닌가. 돈이 없어 입원도 못하고 있다는 말에 그날 탄 적금을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건넸고 고스란히 그 친구의 남자친구가 오토바이를 사는 데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더랬지.
수술만 잘 되면 갚아준다는 친구 엄마는 멀쩡하였고 부릉부릉 남자친구의 오토바이 뒤에서 부서지게 웃던 친구의 거짓말 또한 결국 돈 때문이었던 것. 그에 비하자면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거짓말 이력은 참 소설이지 않은가. 중졸 학력인 그가 서울대 법대 졸업을 사칭해 5천억 원이나 되는 돈을 빼돌리기까지, 그 무시무시한 거짓말도 놀랍다지만 그에 속아준 우리 사회는 또 뭐람. 그에 비하자면 내 친구들의 거짓말은 참 귀엽지 아니한가.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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