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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력 책임감"… 재판기록 외우고 법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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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력 책임감"… 재판기록 외우고 법정에

입력
2012.05.1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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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께서 주신 사법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판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11일 오전 11시 재판을 마치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내 첫 시각장애인 법관인 최영(32ㆍ사법연수원41기)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월 27일 서울북부지법 판사로 임용 된 후 석 달. 최 판사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법관의 책임이 때로는 두려울 정도로 막중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밖에서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시각장애로 인한 어려움은 아직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부터 서울북부지법 701호 법정에서 민사11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 참여한 최 판사의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최 판사는 동료 판사의 팔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법정에 입장했다. 두툼한 사건 서류 대신 노트북이 마련돼 있는 법대에 앉자마자 최 판사는 이어폰을 왼쪽 귀에 꽂았다. 법원 관계자는 "최 판사가 자료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자료를 음성파일로 만들어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담은 뒤 노트북을 이용해 듣는다"고 참관인들에게 설명했다.

이미 수 차례 재판을 진행한 터여서 재판장, 동료 판사와 함께 재판을 진행하는 최 판사에게서 어색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날 재판에서는 주유소 임대차 계약에 대한 전세권 말소 관련 건 등 다섯 건의 선고와 세 건의 변론이 진행됐다. 최 판사는 주심판사를 맡아 원고와 피고의 분쟁에 대한 변론 진행과 판결 선고를 주도했다.

법정을 찾은 한 참관인은 "시각장애가 재판을 진행하는 데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다"며 "정의의 여신상도 공평한 재판을 위해 상징적으로 눈을 가린 것처럼 (최영) 판사님도 공정한 법관이 돼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판사는 "과거 여성 법관이 처음 임용됐을 때 법원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시각장애 판사가 등장하면서 법원은 또 한 차례 변화하고 있다"며 "법원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제 부족한 점들을 채워줄 시스템을 보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판사는 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사건 기록을 문서파일로 작성하고, 음성변환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를 청취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등 시각물 자료는 보조인이 세세하게 묘사를 해준다.

법원 관계자는 "최 판사는 재판 때마다 재판 기록 음성파일을 두 번 이상씩 청취, 사건기록을 외우다시피 해 재판에 임한다"고 전했다. 임용 후 석 달 동안 최 판사가 처리한 민사사건은 20여 건. 법원 측은 "초임 판사라는 점을 감안해 다른 판사의 3분의 2 수준의 업무를 배당했으나 점차 배당량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 판사는 고교 3학년 때인 1998년 시력이 점차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고, 지금은 불빛 정도만 인식하는 수준인 1급 시각장애 상태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다섯 차례 도전 끝에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도 상위 40위권의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후 지난 2월 서울 북부지법에 임용됐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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