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에 있는 한 축산농장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뒤 우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이 아닌 검역 강화로 대처하겠다고 발표하자 주변에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시민들이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광우병에 민감해 진데다 정부가 당시 신문 1면에 광고까지 내면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시 중단하겠다'고 한 약속을 깼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 생각하기 보다는 미국과의 통상 갈등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 정권의 불치병인 '국민불소통'이 도마에 다시 오르면서 다수가 광우병 촛불 세력과 정부가 또 한차례 전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했다.
'우시우종(牛始牛終)', 즉 "이 정권은 소로 시작해서 소로 끝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입에서 나왔다. 이 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측에는 '2008년 상황을 거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린 정권이 결국 정권 말기에 다시 소 발굽에 채이게 됐다'며 고소해 하는 조소로 들렸을 것이다. 반면 정권 측에는 '광우병과 국민 불안을 이용해 처음부터 정권의 발목을 잡더니 막판까지 소를 가지고 국정을 훼방한다'는 탄식과 걱정으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쪽 저쪽의 큰 기대와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2의 촛불집회는 아직까지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광우병위험감시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4번째로 연 촛불집회에는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수 십만 명씩 모이던 2008년 집회를 떠올리면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초라하다.
광우병 촛불이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막연한 '집단 불안'이 2008년 광우병 사태로 겪은 학습효과로 인해 그 당시만큼 커질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자는 2008년 촛불 시위가 잦아든 직후인 8월 가족과 함께 1년간 미국 연수를 떠났는데 당시 미국 쇠고기에 대한 불안으로 연수를 포기할 생각까지도 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자 고민은 금새 사라졌다. 미국인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소고기를 먹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광우병이 발생한 현지에 가서야 국내에서 경험한 '집단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현지에서 새삼 그 위력을 실감했다.
광우병에 대한 시민 의식이 이런데도 2008년처럼 '뇌 송송 구멍 탁' 식의 주장으로 국민불안을 부추기려는 세력이 있다면 착각에 갇혀 있는 것이다.
2008년 광우병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은 정권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의문은 정부가 지난달 말 곧바로 검역 중단 등 국민을 안심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수입 중단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검역 중단 조치를 취하고 국민에게 이번에 발생한 광우병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킨 뒤 검역을 재개하는 것이 상식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2007년 5월 수입 미국산 쇠고기에서 갈비뼈가 발견되자 곧바로 검역을 중단한 뒤 4일 후 재개했다. 그 해 8월에도 미국산 쇠고기에서 척추뼈가 발견돼 검역을 중단했다가 20일 뒤 재개했다. 정부가 이번 광우병 발생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면 오히려 '선 검역중단, 후 조속 재개'를 자신 있게 취했어야 했다. 광우병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국민에게 "이번 광우병은 10년 넘게 산 소에서 발생한 비정형으로 위험하지 않다" "다른 나라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만 수입 중단을 할 수 없다"는 해명이 진정성 있게 들릴 수 없다. 오히려 '2008년 쇠고기 협상에서 검역주권을 포기했다' '국민 안전 보다는 미국과의 갈등을 더 두려워한다'는 의혹을 확대시킬 뿐이다.
시민 의식이 과거와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12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문제는 언제든 정치ㆍ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배우지 못한 특정세력이 국민 불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거나, 정권이 제2의 촛불시위를 정치 공세로만 치부하고 '불소통'으로 일관한다면 양측이 상대에게 경고하는 '우시우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동국 정치부 차장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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