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출과 횡령으로 얼룩진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비리 행태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검찰은 금융당국의 고발과 통보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를 해왔지만 자체 첩보와 내부자 제보를 통해 수사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드러난 '회장님'들의 범죄 행각은 앞으로 밝혀질 내용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밀항을 시도하다 붙잡힌 김찬경(55ㆍ구속)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엽기적 행각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 회장은 충남 아산시에 있는 '아름다운 골프장&리조트'가 자신의 소유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15개 이상의 특수목적법인(SPC)을 동원했다. 차명대출은 다반사로 이뤄졌고 신용공여한도와 동일인 여신한도 위반 등 불법행위도 금융당국에 다수 적발됐다. 골프장 사업에 김 회장이 빼돌린 고객예금은 1,500억여원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김 회장은 중요민속자료인 아산시 외암민속마을의 건재고택을 매입해 개인 별장처럼 사용하는가 하면, 필리핀 카지노 건설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고객예금 수백억원을 빼돌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회장이 조직폭력배 출신 사업가와 밀항을 시도한 이유도 필리핀 사업을 통해 재기를 모색하려 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의 비리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서와 가족의 계좌를 통해 은행 돈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매달 수천만원에 달하는 개인 생활비도 법인카드로 충당했다. 아버지와 아들 명의로 200억원대 부동산을 매입하고, 자신의 부인이 차명으로 소유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명 외식업체에 100억원 이상을 편법 대출해준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이 업체 주인이 미래저축은행 영업정지 직전인 지난달 바뀐 점에 주목, 김 회장이 서둘러 현금화에 나선 것이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
김 회장의 전횡은 저축은행 내부에 견제세력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그는 은행장도 겸하고 있어 1인 지배구조가 더욱 공고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미래저축은행은 지난해 9월 금융당국의 고발로 장기간 내사를 해온데다, 김 회장에 실망한 직원들이 수사에 잘 협조하고 있어 진도가 가장 빠르다"고 설명했다.
미래저축은행에 비해 수사 속도가 더디지만 솔로몬저축은행의 불법대출 혐의도 꼬리가 잡혔다. 검찰은 임석(50) 회장이 임직원과 공모해 홈페이지 제작업체에 70억원을 부실대출 해주는 등 은행에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정황을 포착했다. 차명으로 선박운용업체를 설립해 비자금을 마련했는지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솔로몬저축은행 사건을 대검 첨단범죄수사부에 배당하면서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 중에서 가장 많은 수사인력을 투입했다. 검찰 관계자는 "임 회장 소환은 불법대출과 횡령 수사의 마지막 단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저축은행의 불법대출 혐의도 검찰 수사망에 걸렸다. 'M&A의 귀재'로 불리는 윤현수(59)회장은 계열 저축은행을 통해 차명으로 300억원을 대출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해 유상증자를 도와준 유진그룹에 200억원을 편법대출해준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이 은행이 대한전선에 600억원 이상을 차명으로 대출해준 혐의도 포착하고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솔로몬저축은행 대주주가 세운 특수목적법인 한 곳과 한국저축은행 지점 한 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