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께서 이 서방을 소개했지요. 지금은 광대물주로 떠돌아다니지만 이제 입도하여 각 지역을 다니며 연락을 해주게 될 것이라, 모두들 인사도 하고 고을과 동리의 거주지며 인심에 대하여도 의견을 나누라 하였습니다. 스승께서 돌아가신 교주의 행적을 말씀하시던 중에 밖에서 시끌법석하던 풍악이 그치더니 주인이 얼른 봉놋방을 넘겨다보며 외쳤지요.
관군 출동이오!
우리 중의 몇몇은 벌써 이런 일에 익숙했던지 행수를 모시고 뒷담을 넘었고, 일부는 열어젖힌 방문 앞의 툇마루 쪽을 막고 서서 한 시각이라도 늦추고자 했습니다.
한 놈도 달아나지 못하게 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내다보니 구군복을 걸친 장교가 군졸 사령들을 거느리고 왔는데, 마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엎드리게 해놓고 우리들이 모였던 방으로 왔지요.
너희는 뭣 하는 놈들이냐?
내가 이 고장에 대하여 좀 아는 편이라 앞으로 나섰지요.
보면 모르오? 우리는 장 보러 왔다가 하룻밤 이 골서 묵어가는 사람들이외다. 웬 소란이오?
허 이놈아, 니 상판대기만 보고 뭘 어떻게 알란 말이냐?
그때에 이신통이 앞으로 나섭디다.
여보쇼, 보아하니 이 고을 군교인 모양인데, 이분들 행색이 이러하나 다들 점잖으신 분들이오.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연유를 말해야 우리도 여차저차 신분을 밝힐 수 있지 않겠소?
장교는 이신통의 앞뒤가 맞는 소리에 잠깐 움찔했다가 호통을 지르더군요.
지금 민변이 일어나서 신분이 수상한 자는 싹 잡아들이라는 본관사또의 명이시다. 뭣들 하느냐, 이놈들을 모두 마당에 꿇려라.
창대와 육모방망이로 윽박지르니 모두들 마당에 내려가 엎드렸습니다. 대개가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니는 장꾼들이오, 나머지는 연희패와 우리들인지라 주막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타관 사람들인 것은 당연한 노릇이지요. 모두 호패를 조사한 뒤에 그 중 다섯 사람이 불려 나갔구요, 장교가 관아로 끌고 가라고 명하더군요.
둘은 호패를 잊고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고, 셋은 호패를 차고 있었음에도 불려 나갔지요. 저는 어찌된 노릇인지 그날따라 호패 차기를 깜박 잊었던 것입니다. 이신통이나 광대패는 여러 고을을 넘나들던 처지라 모두 호패만큼은 다들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야 꼼짝없이 관아에서 뭐라고 치죄한들 당해야 할 판이었지만 이 서방으로서는 억울하고 연유를 모르니 답답했을 겝니다.
나는 광대물주가 업이며, 절기마다 연희를 나오기 전에 미리 순회할 곳을 관가에 알린 바인데 무슨 이유로 잡아갑니까?
잔소리 마라, 특히 이녁 같은 놈과 저놈은 꼭 끌어가야겠다.
장교가 나와 이 서방을 지목하여 어르는 눈치로 보아 처음 검문할 때부터 우리를 건방지게 본 것입디다. 삼문 바깥 향청에 당도해서야 우리는 보통 사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횃불이 사방에 밝혀 있고 촌민들이 오라를 지고 잡혀 들어오는 중이었던 겁니다. 둥글게 둘러친 토담 안에 길게 지은 옥이 꼭 한 채뿐인데 영동 현이 살기는 좋다지만 궁벽한 촌구석이니 무슨 죄인이 그렇게 많겠습니까. 옥방은 세 칸이었는데 우리 타관 것들은 맨 끝 방으로 들어갔지요. 앞과 옆을 서로 볼 수 있도록 통나무로 간살을 해놓은 헛간 같은 곳인데 바닥은 판자를 깔아놓은 대처와 달리 멍석이 깔렸고 반으로 자르고 구멍을 낸 긴 통나무 차꼬를 열어 우리 발을 넣게 하고는 자물쇠를 채웁디다. 아마도 뒷벽이 모두 수수깡에 흙 바른 토벽이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 발로 차면 허물어지겠기에 그러는 모양이지요. 좁은 칸이 가득 차서 우리는 앞뒤 세 줄로 앉았습니다. 옆 칸 사람들은 차꼬에 목에는 널판 칼까지 쓰고 있습디다. 또 그 옆 칸에는 부녀자에 아이들까지 있는 모양이었지요. 처음에는 서로 부르고 찾는 소리로 법석이더니 옥사장이란 자가 와서 심하게 꾸짖자, 옥리들은 죄수들 중 몇 명을 끌어내어 옥 마당의 형틀에 올리고는 사정없이 곤장을 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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